기독교대한감리회(감독회장 김정석 목사)가 감독회장과 담임목사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4년 겸임제’ 개정안을 상정했으나 격렬한 논쟁 끝에 부결됐다. 표결 결과는 찬성 132표, 반대 305표로 압도적인 반대였다. 특히 이번 결과를 통해 교회의 권력 구조 속에서 감리회가 어디로 향할 것인지에 대한 진통이 거세지고 있다.
감리회는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강원도 고성 델피노리조트에서 제36회 총회 입법의회를 개최했다. 이번 입법의회는 교단 헌법과 장정을 개정하는 최고 입법기구로 전국 11개 연회 대표들이 참석해 총 48개 개정안을 심의했다.
상정된 주요 안건은 △감독회장 4년 겸임제 △교회재산 유지재단 편입 범위 축소 △은급부담금 상향안 등으로 교단 구조 개편과 재정 안정, 제도적 투명성 확보가 주요 목표였다.
김필수 장정개정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개정안은 감리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행정의 효율성을 위한 청사진"이라며 "시대적 도전에 대응하는 개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겸임제 찬성 측은 전임제 시행 20년 동안 나타난 교단의 리더십 공백과 교세 하락을 문제로 지적했다. 임융봉 목사는 "감독회장이 교회를 떠난 채 행정에만 매달리면 목회적 감각이 떨어지고 정책의 일관성이 사라진다"며 "겸임제는 현장성과 행정 효율성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8년 이후 9번의 직무대행 체제가 반복됐고 전임제 시행 후 교세는 150만 명에서 110만 명으로 감소했다"며 "감독회장이 교회를 떠나 있는 구조가 교단 쇠퇴를 초래했다. 이제는 행정과 목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위원들은 "겸임제는 교단 재정 효율화에도 도움이 되며 젊은 목회자들의 리더십이 순환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며 "이제는 세대교체와 리더십 갱신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2004년 신경하 감독회장 시절부터 겸임제 필요성이 제기됐음을 언급하며 "시대의 흐름과 현실을 고려할 때 전임제의 한계가 명확하다. 이제는 현장의 감각을 살린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반대 측은 겸임제가 사실상 이중직 허용으로 감리회 교리와 장정의 근본 정신을 훼손한다고 강하게 맞섰다. 조광남 목사는 "감독회장은 교단의 영적 지도자이자 행정 책임자다. 겸임은 책임의 포기이며 권력 집중의 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감리회는 전국 6700여 교회의 연합체다. 겸임제가 도입되면 교단은 대형교회 중심으로 재편되고 중소형 교회들은 행정적 발언권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목회자는 "감리회의 교리와 장정은 자립교회의 이중직을 금지하고 있다"며 "겸임제는 현행 법에 위배될 뿐 아니라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둔 제도로 의심받을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회자는 "감독회장이 스스로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법을 바꾸는 것은 복음의 사역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라며 "감독이 행정가로 변하는 순간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가 아니라 권력의 조직으로 타락한다"고 지적했다.
감리교바로세우기연대·감리회거룩성회복협의회·웨슬리안성결운동본부 등 10여 개 평신도 및 목회자 단체들은 입법의회에 앞서 서울 종로구 감리회관 앞에서 겸임제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감리회가 일부 권력층의 손에 들어가 교단이 정치조직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겸임제는 교단을 권력화시키는 위험한 시도"라고 경고했다. 또한 "감리회의 개혁은 제도 재편이 아니라 회개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복음의 본질이 행정 권력에 종속되는 순간, 교회는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감리회의 근간은 헌법이 아니라 성경이며 교단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며 "감독회장 겸임제는 신앙의 영역을 행정 권력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겸임제 반대 의견과 관련, 김정석 감독회장은 목회서신을 통해 이번 개정안이 권력 강화를 위한 시도가 아니라 책임 확장과 교단 효율화를 위한 제도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감독회장이 교단의 영적 중심이자 행정 수반이 되는 구조는 결국 교황제도의 축소판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결국 4년 겸임제는 압도적 반대 속에 부결되며 감리회는 현행 전임제를 유지하게 됐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감독회장은 4년 전임제로 일하며 임기 후에는 은퇴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감독회장이 소속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유지한 채 교단 대표로서 행정과 영적 사역을 병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편, 이번 논쟁은 제도의 승패를 넘어 교단의 신앙적 방향을 가늠하는 분기점이 됐다는 평가다. 평신도 대표들은 "감리회가 본질을 잃고 제도에 매몰되고 있다. 이번 부결은 하나님의 경고이며 교회가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한 원로 목회자는 "교회를 이끄는 자가 권력을 움켜쥐려는 순간 교회는 복음의 빛을 잃는다"며 "감리회가 권력의 유혹을 이겨내고 성경적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