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irtual reality:VR) 개발에 대한 투자는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된다. 현재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은 이미 개발이 완료된 상태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가상현실을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느냐는 것이다.
현재 VR은 생각햇던 것보다 여러 방면에서 활용 중이다. 가장 많이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게임 등 오락적인 부분이다.
실생활에서는 군사 훈련이나 소방 및 재난 대응 훈련에 사용 중이다. 가상현실만큼 시공간 제약 없이 안전하게 훈련하는 방법은 거의 없기에 당연하고 적합한 솔루션이다. 효과 면에서는 이미 수많은 논문을 통해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이 됐다.
일반 대중에게 관심이 갈 부분은 가상현실 치료다. 인지행동치료를 기본으로, 특히 정신건강 쪽에서 두루두루 사용 중이다. 대인공포증부터 고소공포증·광장공포증·벌레공포증 등을 가진 환자들이 그 대상이다. 환자들을 실제 상황에 드러내기보다는 가상현실 속에서 반복 훈련시켜 증상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사용된다. 또 사회불안장애 환자들에 대한 가상현실 치료도 그 결과가 탁월하다고 한다.
가상현실을 이용한 의료법은 정신건강 같은 트라우마 극복에서 끝나지 않고 신체 재활에도 사용 중이다. 뇌졸중·척수손상·절단 환자 등 일상생활이 불편한 사람들이 가상현실 속에서 일상생활과 관련된 동작을 반복 훈련한다. 훈련을 통해 근육 조절 능력을 회복하고 그에 따라 삶의 질도 향상된다. 특히 뇌졸중 환자의 기억력과 집중력을 높이면서 인지 재활을 하는 데 많이 사용된다.
최근에는 고려대 안산병원 최준 교수 연구팀이 가상현실을 이용해 ‘주관적 만성 이명 증상 완화’ 가능성을 논문을 통해 입증했다(‘이명에 대한 환자 맞춤형 가상현실 중재의 임상시험’). 해당 기술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 2025에서 디지털 헬스 분야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귀에서 삐익 하고 들리는 이명은 외부 청각 자극이 없을 때 귀에서 나오는 소음을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명 현상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10%가 이명 현상을 겪고 있는데, 심한 이명은 집중력 저하와 함께 정신건강에까지 이어진다.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필자도 군대에서 처음 사격하고 며칠 동안 이명 때문에 고생했던 것이 기억난다. 여간 성가신 증상이 아니다.
최 교수팀이 밝힌 내용은 상당히 재미있고 흥미롭다. AI 기술을 통해 환자가 느끼는 이명을 가상현실에서 가상의 물체로 시각화하는 것이다. 귀에서 들리는 이명을 시각화해서 눈으로 보고 인식의 변화를 통해 증상을 완화시킨다는 원리다.
가상의 이명과 동기화된 가상의 비눗방울들이 환자 눈앞에 나타난다. 비눗방울이 다가오면 환자가 터뜨린다. 비눗방울 수가 줄어들수록 이명도 줄어든다. 모든 비눗방울을 터뜨리면 이명도 사라지는 것이다. 현실에 없는 것을 시각화하여 인식시켜 환자 스스로 극복해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기존의 이명 치료법은 보청기 및 소리 발생기 같은 장치를 지속 착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가상현실을 이용하면 이런 불편도 없는 것이다. 이명 치료에 관한 해외 사례도 많지만 현재 이 연구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으며 세계가 주목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가상현실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의료법은 지금도 한국 특허청을 통해 엄청나게 등록되고 있다. 가상현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상현실을 단순한 게임쯤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그 가치를 다시 생각해봄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