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부시’ 정부서 역대 최강 권한 부통령 지내

2003년 10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왼쪽)이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콜로네이드를 걷고 있다. 체니 부통령은 최근 숙환으로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AFP=연합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한 부통령으로 평가받는 닉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별세했다.

4일(현지시간) AP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딕 체니 전 부통령은 폐렴과 심장·혈관 질환의 합병증으로 전날 숨을 거뒀다. 향년 84세. 1941년생인 체니는 20대에 정계에 발을 들인 뒤 평생을 정치인·행정가로 활동하며 1인자인 대통령을 빼고 의회와 행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워터게이트로 정권을 잡은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34세에 당시 역대 최연소 백악관 비서실장에 낙점되면서 백악관과 인연을 맺었고 평생의 정치 기반이었던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10년간 연방 하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아버지 부시’로 통하는 조지 H.W. 부시 정권 때는 국방장관을 지냈고, 2000년 아들 부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을 때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두차례 부통령으로 임기를 함께 했다. 아버지 시절부터 체니를 봐온 아들 부시는 이 기간 미군 지휘권과 외교권 등을 부통령에 일임했다. 미국 대통령만이 갖고 있던 권한을 상당부분 넘겨 받으면서 체니의 영향력도 파죽지세였다. 그간 ‘얼굴 마담’에 그쳤던 미국 부통령의 역할과 영향력이 체니를 기점으로 해서 바뀌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고인은 ‘테러와의 전쟁’의 주요 설계자로도 유명하다. 냉전이 종식된 시기에는 국방부 장관으로서, 이후 미국 부통령으로서 필요하다면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 전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시기를 보냈던 체니는 쿠웨이트에 침공한 이라크를 상대로 한 걸프전쟁을 이끌었다. 9·11 테러 이후 2003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테러 용의자에 대한 고문 등 문제가 드러났고, 이라크 침공의 배경으로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축적했다는 정보를 꼽았지만 훗날 오보였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명성에 치명타를 안기기도 했다. 이런 이력 탓에 체니는 두고두고 비판을 받았다. 앞선 두 전쟁이 미국에 젊은이들의 막대한 희생과 전비 소모를 안기며 진보 진영은 물론 보수 진영에서도 정치에 대한 큰 환멸을 낳았다는 것이다.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체니는 2018년까지도 앞선 침공이 ‘옳은 일’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양당의 현역 정치인 중에서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보수주의자로서 미국 공화당 내 네오콘(신보수)이기도 했던 체니는 미국 정치 전반에 걸쳐 미국 우선주의와 ‘신보수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고인은 현역 시절 대통령에 대한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무력화하고 대통령 권한을 확장하는 데 앞장서왔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격적으로 권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는 면에서 체니는 트럼프에 앞서 똑같은 길을 간 선구자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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