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자금 전략 ‘안정’에서 ‘수익’으로 대전환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 기금이 사상 처음으로 총자산의 절반 이상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금 고갈 시점을 늦추기 위해 안정성을 중시하던 과거의 운용방식에서 벗어나,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공격적인 투자로 기금 운용 전략을 바꾼 것이어서 주목된다.
3일 ‘6월 말 기준 국민연금 기금운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총 1269조1355억 원에 달하는 적립금 중 주식(국내 및 해외)에 투자된 금액은 635조5734억원으로, 전체 자산의 50.1%를 차지했다. 국민연금 기금 역사상 처음으로 주식 비중이 50%를 넘어선 것이다. 이런 변화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다. 2015년 말 국민연금의 자산 구성은 채권이 56.6%로 절반 이상이었고, 주식은 32.2%에 불과했다. 하지만 10년 만에 상황이 정반대가 됐다. 2025년 6월 현재 채권 비중은 33.1%까지 낮아졌고, 그 자리를 주식이 채웠다. 부동산 등 대체 투자도 11.2%에서 16.8%로 비중이 커졌다.
국민연금이 ‘안전한 예·적금(채권)’ 비중을 줄이고 ‘위험하지만, 수익이 높은 펀드(주식)’ 비중을 대폭 늘린 셈이다. 이는 국민연금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과감한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수익률’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연금을 받을 사람은 늘어나는데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어들면서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기금 운용 수익률을 단 1%포인트만 높여도 기금 고갈 시점을 수년 이상 늦출 수 있다. 결국, 지금의 안정적인 운용만으로는 국민의 노후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더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주식 투자의 무게중심이 국내가 아닌 해외라는 사실이다. 전체 주식 비중 50.1% 중 국내 주식은 14.9%(189조 원)이지만, 해외 주식은 35.2%(446조 원)로 두 배가 넘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는 ‘위험 분산’이다. 1200조 원이 넘는 거대 기금을 한국 시장에만 묶어두는 것은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것’과 같다.
해외 시장으로 투자를 다변화해 한국 경제가 흔들릴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둘째는 국내 시장에 대한 ‘과잉 영향력’ 해소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초대형 고래’로 불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국민연금이 특정 주식을 사고파는 것에 따라 시장 전체가 출렁일 정도였다. 해외 투자 비중을 늘리는 것은 이런 시장 왜곡을 줄이고, 동시에 더 넓은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수익 기회를 찾겠다는 의도다.
국민연금의 이런 행보는 이제 국제 금융시장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다. 글로벌 연기금 2위의 ‘슈퍼 고래’가 투자 방향을 트는 것은 뉴욕과 런던 증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이같은 고수익 추구 움직임을 강화해 오는 2030년까지 주식비중을 55%로 끌어 올릴 계획이다.
국민연금의 이번 ‘주식 50% 돌파’는 단순히 숫자의 변화를 넘어 우리 국민의 노후와 한국 경제, 더 나아가 세계 금융시장의 흐름이 바뀌는 신호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