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쓴 한국 정치에 대한 저술 중 뺄 수 없는 게 1960년대 그레고리 핸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다.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며 우리를 근접 관찰했던 핸더슨은 한국 정치의 특색을 이렇게 압축한다. "정점을 향해 무수히 많은 이들이 엄청난 속도로 나선형 물줄기를 그려낸다." 탁견이다. 일본에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있다면, 우리에겐 이 책이 있다.
그 책보다 더 유명한, 아니 악명 높은 게 1980년대 초 등장한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문제의 저술이다. 미국 지식사회도 좌편향이 심한 탓에 출간 직후 커밍스는 대단한 지적 권위를 누렸다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친일파 청산을 철저하게 한 북한이 대한민국에 비해 정통성이 있다"는 식의 터무니 없는 좌편향 탓이다. 모두 근거없는 헛소리다.
<한국전쟁의 기원>은 국내에서 더 인기가 높았다. 당시 유행했던 <해방전후사의 인식> 시리즈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운동권 아이들을 대거 길러냈다. 그러다가 앞의 두 책에 못지않은 내용의, 미국인이 쓴 한국정치에 관한 저술이 최근 새로 등장했다. 지난해 출간된 <사랑받지 못하는 공화국>(박영사)다.
처음 들어보신다고? 안타깝다. 출간 1년이 넘도록 서평 한 꼭지가 등장한 바 없다. 신문광고도 없었으니 모를 수밖에 없다. 한국 지식사회의 풍토가 그렇게 부박(浮薄)하다. 그렇다고 이 책의 가치가 죽은 건 아니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같은 눈 밝은 분들이 이 책의 가치를 기꺼이 인정하고 있다. 저자는 부산 동서대 브라이언 마이어스 교수다.
그런데 책 제목이 무슨 뜻일까? "대한민국은 태어나면 안될 나라"란 좌파의 프레임에 갇힌 채 끝내 국가정신이 결여되어 흘러가는 독특한 한국 정치의 구조에 대한 따끔한 지적이다. 쉽게 말하면, 대한민국에 막상 대한민국은 없다는 소리다. 우리에게 있는 건 헬조선이란 유행어대로 부글대는 반대한민국 정서뿐이다. 그리고 수상쩍은 우리 민족끼리의 원초적 감정이 전부다.
책은 좌파 비판일까? 아니다. 책의 절반 이상이 좌파의 난동을 방관·방조한 자유우파 비판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부국 대통령 박정희도 때린다. 그래서 흥미롭지만 이 짧은 글에 어찌 내용을 다 담을까? 분명한 건 그 책은 당장 지금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와 <한국전쟁의 기원>보다 의미있다는 점이다. 똑똑한 자유우파가 되려면 이 책을 집으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