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광
장석광

1980년대 중반, 모스크바 미국 대사관 신축 건물에서 소련의 도청 장치가 발견됐다. ‘소련에서는 더 이상 안전하게 첩보 활동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미국에 확산됐다. 웹스터 CIA 국장이 "우리는 여전히 모스크바에서 자산을 모집하고 정보를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KGB 의장 체브리코프는 웹스터의 발언을 인용하며 "이런 이유로 KGB의 방첩 예산은 더욱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CIA는 인적 첩보 능력이 건재하다는 신호를 보냈는데, KGB는 같은 발언을 예산 확대 명분으로 활용했다. 같은 정보라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사람마다 배경지식·경험·직업·가치관이 달라 같은 사실이라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정보기관은 주관적 해석으로 인한 정보 왜곡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제도와 절차를 운영한다. 출처를 다각화하고, 분석 과정을 구조화하며, 지속적인 검증을 통해 관점에 따른 편향을 최소화한다.

최근 한국 유튜브 업계에서 놀라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의 폐쇄적 정치체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개인 유튜버들에 의해 거의 실시간으로 분석, 보도되고 있다. 특정 국가 지도자의 실각설이 몇 달 동안 한국 유튜브를 달궜다. 권력의 붕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징후들이 ‘실시간 속보’처럼 쏟아졌다. 수십 년 경력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보기관을 압도하는 정보력과 순발력이다. 그런데 유튜버의 분석과는 달리 그 지도자는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

오늘날 정보는 차고 넘치지만, 개인이 모든 내용을 직접 확인하긴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내용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자극적이거나 흥미를 끄는 정보가 더 쉽게 퍼질 때도 있다. 정보의 선택적 수용은 가짜 정보가 확산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사회는 정치적·이념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정책이나 선거는 팩트가 아닌 감정과 음모적 주장에 영향을 받을 위험성이 커진다. 사회에 불신과 냉소가 깊어지면 민주주의 작동이 약화될 수 있다.

정보의 선택적 수용은 디지털 시대에서 불가피한 현실이지만, 민주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짜나 과장 정보를 식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판단력은 갖춰져야 한다. 다음은 디지털 콘텐츠를 평가할 때 활용하는 필자 나름의 간단한 점검 기준이다.

첫째, 자극적 표현 여부다. 제목·이미지·섬네일 등이 과도하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은지 살펴본다. ‘낚시성’ 성향이 강할수록 정보의 신뢰성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제작자의 전문성이다. 콘텐츠 제작자가 해당 분야에서 학위·연구·실무 경험 등 전문성을 갖췄는지 확인한다.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정보의 정확성 또한 낮을 수 있다.

셋째, 제작자의 편향성과 객관성이다. 제작자가 아무리 전문성을 갖췄더라도 개인적·정치적·상업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보가 왜곡될 수 있다. 반복적으로 특정 집단에 유리한 시각만 제시한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넷째, 출처와 검증 가능성이다. 콘텐츠에서 언급된 정보가 신뢰할 수 있는 공식 자료나 교차 검증 가능한 출처에 기반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출처가 불명확하거나 비공식적이라면 신뢰도는 떨어진다.

다섯째, 이해관계 분석이다. 해당 콘텐츠로 가장 직접적 이득을 얻는 개인이나 집단이 누구인지 고려한다. 이해관계는 정보 전달 의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섯째, 정보의 최신성이다. 디지털 콘텐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쉽게 낡을 수 있다. 작성일, 업데이트 여부, 최근 상황과의 적합성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정보의 완벽한 객관화는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기본 원칙을 습관화한다면 가짜나 과장 정보에 휘둘릴 위험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시카고를 상대로 대대적인 이민 단속을 예고하며 올린 이미지.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의 장면과 대사를 차용했다. /트루스소셜
트럼프 대통령이 시카고를 상대로 대대적인 이민 단속을 예고하며 올린 이미지.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의 장면과 대사를 차용했다. /트루스소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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