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한미 관세협정 결과를 놓고 ‘급한 불은 껐다’는 반응이 많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많이 당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을 먼저 불러 상대의 기를 꺾은 뒤, 차츰 깎아주는 ‘거래의 기술’에 말려들었다.

유럽·일본·한국 중 우리가 제일 크게 당했다. 한국의 대미 투자액은 3500억 달러. 일본은 5500억 달러다. 외환 보유고는 한국이 평균 4100억 달러, 일본은 1조3000억 달러다. 형평에 안 맞다. 게다가 트럼프가 트루스소셜에 올린 표현을 보면, 일본은 ‘투자’(Japan will invest…)로 된 반면, 한국은 ‘기부’(South korea will give to…)로 되었다. 우리는 트럼프가 지정하는 자산에 기부하는 형식이다. 수익의 90%는 미국이 갖고 한국은 10%다.

거래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상대를 깊이 알아야 한다. 미국 조선업이 망한 배경이 존스법(Jones Act) 때문인데, 언론도 이를 제대로 다룬 적이 없다. 결론부터 말해, 존스법을 고치지 않으면 ‘마스가’(MASGA·미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 된다. 돈만 주고 한국에 떨어질 과실(果實)이 생길지 말지 알 수도 없다.

존스법은 1920년 제정된 미국 연안무역법 제27조다. 요약하면, 미국 항구 간 운송은 반드시 미국에서 제조하고 미국인이 소유·운영하는 선박만 사용토록 한 법률이다. 당초 국가 안보와 미 조선업 보호가 목적이었다. 그런데, 100년 가까이 미국 내 인건비·제작비는 하늘 높이 솟았는데 존스법은 안 고쳐지니까, 조선업이 일본·한국·중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의 조선 점유율은 0.1%로 추락했다.

연안 운송 배가 없으니 해운운송비도 치솟았다. 기업들은 트럭·철도를 이용하거나, 아예 필요한 물품을 중국에서 수입해 쓰는 것이 해운비보다 싸게 먹혔다. 그럼에도 존스법은 안 고쳐진다. 왜? 100년 동안 끈질기게 살아남은 극소수 연안 해운사들이 미국 내에서 독과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존스법 개정을 막는 로비를 계속한다. 우리 민노총과 비슷하다.

2025년 6월 상원의원 마이크 리와 하원의원 톰 매클린톡이 존스법 폐지 법안(Open America‘s Waters Act)을 발의했지만, 2020년 이후 발의한 개정 법안들이 죄다 무산됐다. 동맹국의 조선업을 부활시킬 우리의 종잣돈이 제대로 쓰일지 자못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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