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선 재건에 1500억 달러
국내 시설투자 여력 그만큼 줄어
협력업체들 특히 걱정 커
노란봉투법까지 겹쳐 일감 사라질 것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국 무역협상 대표단과 만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미국이 한국과 전면적이고 완전한 무역 합의를 체결하기로 했다"며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되었음을 알렸다.
뜻밖에 하루 먼저 협상이 타결되면서 정부와 산업계는 한숨 돌리는 모습이나 조선업계를 중심으로 우려가 나온다. 특히 한화오션 등 미국 조선 재건 중심 기업 협력업체들의 걱정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은 31일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 소식을 전하며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고 자평했다. 이 대통령은 "조선,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에너지 등 우리가 강점을 가진 산업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의 적극적인 미국 시장 진출을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특히, 이 중 1500억 불은 조선 협력 전용 펀드로 우리 기업의 미국 조선업 진출을 든든하게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1500억 달러의 조선 협력 전용 펀드를 강조했으나 업계에서는 오히려 이 점을 우려한다.
업계에서는 15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대미 조선업 투자가 이루어진다는 건 그만큼 국내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것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특히 대기업 조선사 협력업체들의 걱정이 크다. 대미 투자가 선박 건조 완성업체인 대기업에는 미국 시장 진출이지만, 협력업체들로서는 국내 일감이 줄어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달갑지 않다는 이야기다.
조선 대기업의 한 협력업체 대표는 3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단기간에 미국 조선업이 국내 업계를 위협하지는 않겠지만, 국내 기업이 미국에 자본을 투자하고 여기에 기술, 노하우까지 전수하게 되면 미국 조선이 한국을 위협하는 경쟁자로 떠오를 것이고 그만큼 일거리가 줄어드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은 국내든 해외든 어디서 선박을 건조해도 상관없겠지만 협력업체는 해외로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국내에 새로 생길 일감이나 기존 일감이 줄어들면 존폐의 기로에 내몰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란봉투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에도 특히 조선업계가 민감하다.
잘 알려져 있듯 노란봉투법은 하도급 기업 노조가 원도급 기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고, 파업 대상의 범위를 넓히면서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원도급 업체인 대기업으로서는 수백, 수천 개의 하도급 기업 노조를 상대로 교섭해야 하는 부담이 크고 생산기지 이전 등 해외 투자도 파업 대상이 되는 데다가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함으로써 파업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8단체가 지난 30일 노란봉투법 처리 중단 촉구를 위한 입장문을 낸 데 이어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과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이 노란봉투법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 것도 경영계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노란봉투법 발의가 옛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협력업체 노조의 불법 파업 및 시위로 촉발되었다는 점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수많은 협력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조선업계는 자동차업계와 함께 이 법안에 특히 거부감이 크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우려는 원도급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간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 뿐 하도급 업체 또한 불만이 적지 않다.
위 조선 협력업체 대표는 "노조가 직접 사용자인 하도급 기업을 뛰어넘어 원도급 기업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한다는 건 우리를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이라며 "그러면 우리가 원청과의 계약에서 생각지 못한 불리함을 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노란봉투법으로 대기업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면 우리 같은 협력업체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며 "근로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되니 누구 위해서 이런 법을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