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표 미디어기기 밀수 급증…北 청년들, 中드라마·예능에 빠져
中 지방정부, 알면서 방관…전력 부족 北에 충전식 기기 맞춤 제작
브랜드 없는 ‘MP7’, ‘MP8’ 기기 쏟아져…당국 감시 피해 은밀 유통
北당국 단속 착수했지만…“보위부 자녀들도 쓰는 중” 통제 역부족
북한의 독재정권이 정보통제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중국과의 국경 지역에서는 그 벽을 무너뜨리는 조용한 문화 침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북한 국경을 마주한 중국 지린성·랴오닝성 지역에 북한 맞춤형 미디어기기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무상표 공장'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지난 25일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기기들은 충전식 미디어 플레이어, 소형 TV 등으로 구성돼 북한 내부로 은밀히 반입되고 있으며, 기기 안에는 중국 드라마, 예능, 무협영화 등의 콘텐츠가 기본으로 탑재돼 있다.
데일리NK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 기기들을 생산하는 공장들은 대체로 200평 안팎 소형 규모로, 20개 안팎의 조립 라인에 15~30명 정도의 인력이 투입돼 수작업 중심으로 운영된다. 기기 형태는 전력 공급이 불안정한 북한 환경에 맞춘 충전식이며, 녹화 불가·문서 파일은 TXT만 가능·외형 색상 다양화 등의 요청이 사전 반영된다. 특히 북한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로고나 상표가 없는 ‘무상표’ 기기 생산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들 공장은 대부분 중국 지방정부가 위임한 무역회사 또는 민간 자본에 의해 자금을 선지급 받고 제작되는 주문형(OEM) 방식이다. 겉으로는 보조배터리나 휴대폰 부품 공장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상은 북한 밀수업자들과 연결된 미디어기기 제조기지인 셈이다.
북한 내부에서 과거 한국 드라마나 가요 등이 직접 기기에 담겨 전달되던 방식에서 최근에는 중국 콘텐츠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국 콘텐츠는 SD카드나 USB에 따로 저장해 밀반입되고, 본체에는 중국식 가족드라마나 도시풍 예능, 유행가 등 비교적 단속에 덜 민감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북한 청년층은 이들 콘텐츠에 열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중국 영상은 음질·화질이 뛰어나고 배우들의 표정과 감정이 잘 전달된다는 평가가 퍼지고 있다"며 "일부 주민들은 중국 도시생활과 가족문화를 동경하는 수준까지 변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단순한 문화 수입의 차원을 넘어, 중국 당국이 의도적으로 중국식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북한 사회에 은근히 주입하는 장기 전략으로도 해석된다. 특히 중국 당국은 이런 흐름을 묵인하거나 방조할 뿐 아니라 '지역 경제 기여'를 이유로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라는 것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에 북한 당국은 최근 ‘MP7’, ‘MP8’로 불리는 신형기기를 단속하고 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단속하는 검열 부서의 자녀들조차 해당 기기를 소유하거나 이용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더불어 밀수경로를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고, 수요가 높은 현실에서 ‘시장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 정권은 이처럼 외부 문화에 노출되는 것을 심각한 체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중국이라는 우방국을 통한 ‘은밀한 개방’이 자행되는 상황을 막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며 "공산권 내부에서도 ‘문화 전선’은 이미 국경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