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은 심리전의 핵심 전략이다. 정보를 명확히 공개하지 않고 일부러 애매하게 유지해 상대가 확실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책임이나 역공의 위험을 줄이고, 상대의 반박을 어렵게 하며 리스크를 낮춘다. 동시에 혼란과 불안을 유도해 내부 분열과 불신을 키우고, 상황에 따라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러한 전략적 모호성을 구현하는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가 바로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즉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입장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피함으로써, 상대방이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고 정보에 대한 불확실성을 유지하게 한다.
2024년 10월, 이스라엘은 레바논 베이루트의 헤즈볼라 지하 벙커를 정밀 타격해 하셈 사피에딘 등 고위 인사 수십 명을 제거했다. 당시 사피에딘과 회동할 예정이었던 이란 혁명수비대(IRGC) 쿠드스군 사령관 에스마일 카니(Esmaeil Qaani)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 공습을 피했고, 이로 인해 정보 유출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그는 비공식 조사를 받았고, 일각에서는 카니가 모사드의 이중 스파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이스라엘은 이 의혹에 대해 NCND 원칙을 고수하며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란 군부 내부에서 카니의 입지가 흔들렸다. 2025년 6월, 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표적 암살과 정밀 타격에도 불구하고 카니는 여전히 생존해 있었다. 이중 스파이 의혹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기존의 전략적 모호성을 계속 유지하는 듯했다.
6월 30일, 모사드 공식 X(전 트위터) 계정으로 알려진 @MossadSpokesman에 페르시아어로 ‘카니는 우리 스파이가 아니다’라는 글이 게시됐다. 이란 국민을 주요 타깃으로 하고, 14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계정에서 모사드가 ‘카니의 모사드 스파이 의혹’을 명백하게 부인해 준 것이다.
누가 봐도 이란의 내부 분열을 노린 모사드의 고도의 심리전이다. 그런데 문제는 심리전의 전개 방식이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모사드가 전략적 모호성과 NCND 원칙을 깸으로써 리스크 부담을 안았다고 판단했다. 과연 그럴까?
이스라엘 군사정보부 출신 심리학자 사피르(Avinoam Sapir)의 과학적진술분석기법(SCAN)으로 게시글을 분석하면 문장의 의미가 달라 보인다. SCAN은 진술의 구성, 시제와 대명사 등을 통해 문장의 숨은 의미를 추론하는 기법이다.
게시글에서 현재시제를 사용했다는 점은, 과거 어느 시점에 카니가 모사드의 스파이로 활동했을 가능성까지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아님을 시사한다. ‘스파이’(spy)라는 단어를 정식 정보요원(agent)으로 한정해서 사용했을 경우, 카니가 모사드의 비공식 협조자, 계약직 정보원, 혹은 무의식 협력자로 활동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우리’(our)라는 표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우리(our) 스파이’가 아니라면 우방국 즉 미국이나 영국의 스파이였을 가능성은 있다는 표현이다.
게시글은 전술적으로는 단정적 부인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전략적으로는 모호한 단어들을 사용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이러한 방식은 상대방에겐 혼란을 유발하고, 게시자에겐 전략적 대응의 폭을 넓혀주는 효과를 낳는다. 기존의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한층 더 정교하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진화시킨 기법이다.
필자는 이러한 모사드의 언어 전략을 ‘전략적 단정 모호성’(Strategic Definitive Ambiguity)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