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소설가 궈창성이 19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회의실에서 작년 출간된 '피아노 조율사'와 관련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민음사
대만의 소설가 궈창성이 19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회의실에서 작년 출간된 '피아노 조율사'와 관련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민음사

천부적인 음감을 타고났으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소년은 끝내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 40대의 피아노 조율사가 된다.

60대 사업가 린쌍은 몇 달 전 세상을 떠난 아내가 운영하던 음악 학원에서 홀로 피아노를 치는 조율사와 마주친다. 꿈결같이 부드러운 연주를 들으며 린쌍은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대만 장편소설 ‘피아노 조율사’는 각기 상실의 아픔을 가진 두 인물이 피아노를 찾는 여정에 오르는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 궈창성(61)은 이 소설로 2020년 타이완문학금전상, 2021년 보문학상 대상 등 대만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다. 세계 10여개국에 출간된 이 소설은 지난해 한국에도 출간됐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초청돼 한국을 찾은 궈창성은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을 만나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작품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궈창성은 "이 나이쯤 되면서 가족도 잃고 친구도 잃고 연인도 잃다 보니 제게 남은 게 뭔지 고민하게 됐다"며 "‘피아노 조율사’의 주제는 ‘상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연주도 똑같이 반복될 수 없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똑같이 반복될 수 없다"며 "제가 잃은 것이 무엇이고 어떤 상실을 겪었는지 생각하고 그걸 글로 풀어냈다"고 했다.

‘피아노 조율사’는 피아노와 음악을 소재로 하는 만큼 라흐마니노프, 슈베르트, 바흐, 드뷔시 등 여러 음악가의 이야기와 연주를 상세히 서술한다. 선율이 귓가를 스치듯 감각적인 표현과 묘사가 긴장감과 생동감을 더한다.

궈창성은 피아노를 연주하진 않지만, 클래식 음악의 오랜 팬이라고 한다. 그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면서 언어로 소통하기 어렵던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함께 클래식을 들으며 위로받았고 자연스럽게 음악을 소재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만 피아노 연주가 소설 전반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궈창성은 "음악이 주가 되는 게 아니라 매개체가 되어 삶을 보여주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인공의 직업이 피아니스트가 아닌 조율사인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정확한 음을 내도록 피아노를 조율하는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또는 삶을 바로잡는 과정으로도 읽힌다.

궈창성은 "조율은 정확한 음정을 찾는 과정이지만, 사실 음악에서 음정을 완벽하게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중요한 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직시하고 조금 더 아름다운 소리, 더 나은 삶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생은 완벽하지 않아요. 조율사가 피아노를 조율하듯이 우리 모두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각자의 삶을 조율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궈창성은 30대에 한 차례 소설 집필을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다가 13년 만에 소설을 써 ‘피아노 조율사’를 완성했다. 그는 "그 기간에 어머니와 연인이 세상을 떠났고, 제가 뉴욕 유학을 마치고 대만에 돌아오기도 했다"며 "많은 일을 겪으며 다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30대에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너무 잘한 일인 것 같아요. 그 무렵의 저는 삶에 대해서도, 사랑에 관해서도 잘 알지 못했죠. 13년의 공백기 동안 많은 것을 쌓을 수 있었고 더욱 성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궈창성은 ‘피아노 조율사’를 "저 자신에게 쓴 책"이라고 말했다. 각 인물이 인생의 서로 다른 시기 작가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했다. 조율사인 화자는 좌절하던 젊은 시절의 궈창성을, 60대에 물질적 풍요를 얻었으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린쌍은 지금의 그를 보여준다.

그는 "이 소설이 10여개 국가에서 번역 출간되고 대만에서 거의 모든 상을 휩쓸다시피 한 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결과였다"며 "상실감을 담아낸 소설에 많은 독자가 공감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