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동안 핵무기를 만들 능력을 갖춘 수십개 국가가 핵개발에 나서지 않은 것은 미국이 제공하는 억지력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동맹들에게 냉전 당시 수준의 핵우산을 제공해야 합니다. 냉전 시기 유럽에서 그랬듯이, 군사와 핵 사용에 관련된 의사 결정에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더 많이 참여시켜야 합니다."

국내 민간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이 지난 23일 서울에서 주최한 ‘아산플래넘 2025’에서 기조연설을 한 커트 캠벨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이같이 강조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핵전력 증강 의지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미국이 냉전 시대부터 한국 등 동맹 국가들을 대상으로 제공해온 핵 억지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캠벨 전 부장관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며 핵무기를 언급한 것은, 특정 상황에서 실제로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북한의 위험한 도발도 계속되고 있으며, 중국에선 가장 큰 규모의 현대적인 핵전력 증강이 이뤄지고 있다"고 현재 국제 정세를 분석했다.

그는 "동맹국과 동료 국가들에 대한 강력한 핵우산 제공은 향후 평화와 안정의 필수 요소"라며 "이 과정에 발생할 고민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조치들이 아시아 전역에서 일어날 핵확산을 막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 행사의 축사를 통해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의 중요성을 거듭 밝히며 캠밸 전 부장관의 주장에 맞장구를 쳤다. 조 장관은 "(미국은) 전통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증대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억제를 강화해 왔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도 한국 방어에 대한 철통같은 약속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확장억제 제공 약속이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그러면서 "북한이 태평양을 넘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하더라도, 한국에 대한 핵 공격 능력을 유지하도록 허용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며 북한의 핵공격 능력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단호한 입장을 전했다.

또한 북러 군사협력과 관련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러시아와의 불법 군사협력으로부터 대가를 얻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러시아가 북한에 최첨단 군사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미국의 안보와 동아시아 동맹국들의 안보를 분리할 수 있다고 오판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직 진행 중이고 대러시아 파병을 비롯한 북러 군사협력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관계를 끌고갈 수는 없다"면서도 "러시아가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중요한 행위자라는 지정학적 현실에는 변함이 없다"고도 했다.

오는 6·3 대선 후 출범할 한국의 새 정부에 대해서는 "탈냉전기 질서가 강대국 간의 규합을 통해 형성될 수 없고, 형성돼서도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리라 믿는다"며 "현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새 정부에서도 초당적 지지를 바탕으로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