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계엄령 선포를 ‘내란’으로 규정했음에도 별 다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번에는 군 정보기관 최고책임자인 국방정보본부장을 소환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혐의는 ‘내란 공모’다. 공수처에 의해 군 정보기관이 모두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수처가 지난 19일 오전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중장·육사 47기)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혐의는 ‘내란 공모’다. 공수처는 지난 2월 21일 원천희 본부장의 사무실과 주거지를 압수수색했고 이때 확보한 휴대전화 등에 대한 분석 작업을 거쳐 본격적인 조사에 나선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12월 2일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이 만났을 때 원천희 정보본부장이 배석한 것을 놓고 ‘내란 공모’라고 주장한다. 이 자리에서 비상계엄을 논의했다는 게 공수처의 주장이다.
지난해 12월 1일과 3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경기 안산시 롯데리아에서 문상호 당시 정보사령관, 정보사 대령들과 만났을 때 나눈 이야기를 원천희 정보본부장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공수처는 추측하고 있다. 노 전 사령관과 문 사령관, 정보사 대령들은 롯데리아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관위 연수원 등을 점거할 ‘수사 2단’ 구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수처의 주장과 추측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본부장 우종수)의 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국수본은 지난 1월 23일 원 정보본부장과 다른 군 관계자 5명을 내란 혐의로 조사한 뒤 공수처로 이첩했다.
국방부의 해명은 경찰 국수본이나 공수처 주장과 전혀 다르다. 지난해 12월 2일 대면보고는 정보사 예산 보고였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계엄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 국방부는 강조했다.
군 정보기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경찰 국수본과 공수처가 억지스러운 수사를 벌이는 데 다른 저의가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계엄령 이후 경찰 국수본과 공수처는 주요 군 관계자들을 ‘내란’ 또는 ‘내란 공모’ 혐의로 기소했다. 이 가운데 문상호 정보사령관,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구속 기소되면서 군의 4대 정보기관 가운데 두 곳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됐다.
남은 곳은 군 정보기관을 총괄 지휘하는 국방정보본부와 777사령부뿐이다. 그런데 경찰 국수본과 공수처는 12월 2일 국방장관 대면보고 당시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국방정보본부장에게 ‘내란 공모’ 혐의를 씌운 것이다.
국방정보국(DIA)으로 번역되는 국방정보본부는 예하에 국군정보사령부와 777사령부를 두고 있다. 두 기관 모두 극비 첩보수집을 담당한다. 국방정보본부는 정보사의 인간첩보(휴민트)와 777사령부의 신호첩보(시긴트)를 보고 받고, 군 첩보작전을 총괄 지휘·감독한다. 두 기관 간의 갈등·알력을 조정하는 역할도 있다.
국방정보본부가 마비되면 개별 정보기관이 아무리 노력해도 국가 의사결정권자에게 도움이 되는 첩보를 생산·전달하기 어렵다. 국가정보원 또한 해외 및 대북 첩보수집 업무에 지장을 겪게 된다. 즉 현재 경찰 국수본과 공수처는 "내란을 공동 모의했다"는 명확한 물증이나 자백 없이 군 핵심 정보기관 4곳 가운데 3곳의 기관장을 구속 수사하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