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9월 MBK·영풍이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인수·합병)를 개시한 이후 수많은 사회적 논란들이 이어졌다. 단지 고려아연이라는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영풍 간의 경영권 다툼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은 MBK와 영풍이 제기한 고려아연 임시주총 효력정지 가처분을 일부 인용함으로써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고려아연 경영권 방어를 위한 하나의 방책이었던 ‘상호주 제한’을 통한 영풍의 의결권 제한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지난 1월 임시 주총 당시 고려아연은 상호주 제한을 통해 영풍의 의결권을 막은 상태에서 여러 안건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처리된 안건들 대부분이 무효화됐다. 이달 말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를 지켜봐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고려아연이 약간 더 불리한 상황이 됐다. 고려아연 지분은 MBK 측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보다 약 7% 정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이 ‘집중투표제’에 대해서는 그 효력을 인정해줌으로써 당장 이사회가 MBK 쪽으로 넘어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대주주인 MBK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 소수 주주들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뺏기 위해서는 MBK가 이사회 과반을 확보해야 하는데, 집중투표제로 인해 앞으로 몇 개월이 더 걸릴 수 있다. 현재 이사회 구성은 고려아연 측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MBK는 여러 임시 주총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이사 수를 늘려 과반 확보에 나설 것이다.
지난 2월 중국은 텅스텐·텔루륨·비스무트·몰리브덴·인듐 등의 핵심광물에 대해 수출 통제를 결정했다. 이러한 영향은 현재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對)중국 수입의존도가 거의 90%에 육박하는 텅스텐과 몰리브덴은 영월군의 상동광산 등 과거 폐광됐던 광산을 재개함으로써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인듐과 비스무트, 텔루륨 등 3가지 소재는 국내에서 이들을 생산하는 유일한 기업인 고려아연이 책임지고 있다. 특히 터치스크린 등에 쓰이는 핵심광물인 인듐은 고려아연이 전세계 제련소 중 1위 생산기업이다. 핵심광물 확보는 국가기간산업으로서 중국의 수출통제를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까지 직결된다.
미국 지질조사국 2025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3년 동안 미국에서 인듐을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는 대한민국이었다. 미국 내 인듐 공급의 약 30%를 고려아연이 사실상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고려아연의 경영권 사태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이유다.
또한 고려아연의 제련소는 울산시에 위치해 있어 지역 경제의 중대한 역할을 하는 울산시 향토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김두겸 울산시장은 MBK의 고려아연 인수에 절대 반대하는 이유로 "MBK는 중국계 자본이 대량 유입된 펀드를 구성하고 있어 적대적 합병 시 핵심기술 유출이 심히 우려된다"고 언급했다. MBK에 제기된 친중 이슈는 고려아연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자원 확보를 통한 국가안보, 그리고 시장의 신뢰도를 위해서도 고려아연이라는 기업의 ‘코리아 국적’을 지켜야만 한다.
최근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지난 10년 전 인수한 MBK의 경영 능력도 회의적이다. 기업회생은 경영실패를 의미한다. MBK의 고려아연 인수는 제2의 홈플러스 예고편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