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해외 인적첩보를 수집하는 국군정보사 요원 명단이 대량 유출됐다. 정황 상 내부자 소행이 유력해 보인다. 정보사 안팎에서는 고위급 내부 조력자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중국에서 활동하던 블랙 요원들 명단이 유출된 데 이어 이번 일로 우리나라 대북·해외 첩보망은 사실상 붕괴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매일경제> 등에 따르면 한 달 전쯤 국군정보사령부의 공식요원(화이트)과 비밀요원(블랙) 신상 정보 수백~수천 건이 북한으로 유출된 정황이 포착됐다. 관련 제보를 받은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들이 국방부에 자료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한다.
현재 방첩사령부가 사건을 수사 중이다. 정확한 유출 시점이나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수의 대북첩보요원 신상 정보가 북한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은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대다수 요원이 작전을 중단하고 급히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군무원 A 씨의 개인노트북 때문에 일어났다. A 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정보사 해외공작부서에서 근무 중이다. A 씨는 "노트북을 해킹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사 요원 신상정보는 인터넷과 분리된 내부 서버에만 보관한다. 사령관조차 함부로 열람할 수 없다. 때문에 방첩당국은 해킹 가능성과 함께 A 씨가 정보를 빼돌렸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A 씨의 출입국 내역과 노트북에 요원 신상정보가 저장된 이유와 과정을 조사 중이다.
정보사 안팎에서는 "열람하기도 어려운 기밀이 모두 넘어간 것을 보면 내부에 조력자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화이트 요원은 각국 공관 무관부 파견 병력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블랙 요원은 신분을 완전히 숨기고 활동하는지라 신상 정보는 최상위 기밀로 철저히 보호 받는다. 이런 기밀을 군무원이 가진 것 자체가 수상하다는 지적이다.
정보사령부 블랙 요원들의 신상 정보가 유출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8년 6월 검찰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정보사 블랙 요원 명단을 중국에 넘긴 퇴직 정보사 간부 황 모 씨를 기소했다. 당시 정보당국이 현지 요원들을 철수시켜 인명피해는 없었다.
2021년 10월에는 중국 내 국가정보원 블랙 요원과 조력자 명단이 중국 국가안전부(MSS)에 넘어갔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정보기관 조력자였던 A 씨는 중국에서 체포된 뒤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의 심문을 받았는데 "너희 정보기관 수뇌부에서 블랙 명단을 통째로 넘겼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인민군 보위국부터 국가보위성 요원들을 중국과 러시아에 상주시키며 우리나라 블랙요원을 납치·북송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부터는 러시아도 우리나라 블랙요원을 노린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이 입수한 정보사 블랙 요원 명단을 러시아와 중국에 판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