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
이춘근

지리멸렬이란 ‘갈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후 미국의 국력이 대폭 약해진 바는 없다. 트럼프 시대와 바이든 시대의 미국 국력은 유사하다. 미국 정도의 강대국이 세계의 패권국으로 군림하는 경우 세계는 평화롭고 잠잠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국제정치 및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하나의 패권국이 군림할 때 세계는 평화로웠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팍스 로마나(Pax Romana),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등의 개념을 만들었다. 로마제국, 대영제국, 그리고 미국이 막강할 때 세계 정치는 평화로웠음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오늘의 미국은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보다 국제정치에서 차지하는 국력과 영향력의 비중이 훨씬 막강하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이 지배하던 세상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다.

냉전사의 권위인 개디스 교수는 1945년 이후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미국의 패권 시대를 ‘장기적 평화 시대’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 작은 전쟁들이 다수 발발하기는 했지만 패권국인 미국이 마치 범죄국가들 처벌한다는 의미에서 벌였던 전쟁이 대부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했던 지난 4년 동안 미국은 처음으로 새로운 전쟁이 발발하지 않은 세상을 꾸려갈 수 있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대선을 준비하며 ‘4년 임기 0회의 전쟁’(Four Years, Zero War) 라는 구호도 만들었다.

바이든은 임기 중 대규모 전쟁을 두 개나 겪고 있다. 패권국인 미국을 우습게 보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는 전쟁들이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은 바이든의 허약함은 전쟁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든은 이스라엘과 같은 친구들을 홀대했고 이란과 같은 적국을 달래느라 애썼다. 독재자들인 푸틴과 시진핑을 갈라치기 해야 하는데 오히려 둘이 뭉치도록 만들었다. 더 막강한 적성 국가를 놔두고 중국보다 훨씬 약한, 미국 GDP의 8.5% 도 안 되는 가난한 나라 러시아를 마치 미국의 주적으로 생각하는 오류도 범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로 날아갔지만 이스라엘 총리 외에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바이든은 하마스와 적대적인 팔레스타인 지도자와 요르단 대통령도 만나고 싶었지만 거부당했다. 바이든은 무법적인 테러리스트와 전쟁을 치르려 하는 이스라엘에게 ‘전쟁의 법’(Law of War)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미국의 국력이 아무리 강해도 전략과 의지가 없을 때 미국은 세계의 지도국가가 될 수 없다. 기력과 체력은 물론 정신력도 허약해 보이는 바이든의 미국이 비틀거리고 있다. 바이든을 우습게 보는 아시아의 독재자들도 준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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