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
도명학

북한에 있을 때 제일 싫은 것 중 하나는 지식인의 위선이었다. 이념과 체제에 대한 신념이 누구보다 확고한 것처럼 보이려 했다. 속으론 북한 체제 한계와 변화 필요성을 알면서도 그랬다. 지식인이 체제에 비판적이라고 찍히면 특별히 손 보니 살아남자면 어쩔 수 없었다.

필자의 친척 가운데 대단한 공산주의 이론가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눌 때가 많았는데 피곤했다. 필자의 말을 사사건건 꼬집으며 "당성" "혁명성" "사회주의 승리의 필연성"을 역설했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노동당이 선전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필자는 사회주의가 왜 역사의 오류가 되었는지, 다른 공산국가들보다 북한 체제가 어떤 측면이 더 나쁜지를 역설하며 맞섰다. 친척 사이에도 속에 없는 거짓말하는 것이 보기 싫어 일부러 삐딱한 소리로 심술을 부렸다.

그는 박식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고 현실감각이 매우 예리했다. 그런 그가 나와 같은 생각을 속에 품지 않았을 수 없었다. 그는 "너만 똑똑한 척 마라. 속 터지는 사람 너뿐인 줄 아나 본데 짧은 혀 때문에 긴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걸 명심해"하고 핀잔했다. 그는 가끔 어떤 친구가 찾아오면 집필실 삼아 쓰는 방문을 안으로 잠그고 온 밤 지냈는데 거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그런 일이 있고 나면 꼭 그 입에서 새로운 ‘뉴스’가 흘러나왔다. 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겉과 속이 다르게 살 능력이 없으면 도무지 지식인의 삶을 살 수 없는 북한이다.

남한도 지식인들이 문제 있다. 자기 입지와 기득권 같은 것을 지키려고 속마음과 다른 소리를 한다. 이해관계만 맞으면 옳지 않은 것도 옳다고 주장하고, 입지가 흔들릴 것 같으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실책을 인정하면 밤을 밝혀 연구하고 집필한 모든 것이 제로가 되고 거취가 걱정인 것 같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 해도 반대가 필요하면 반대하는 글을 쓰고 연설한다.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한 사람들도 아는 상식적 문제들도 지식이라는 영역에 올려놓기만 하면 이상한 논리와 결론이 추론된다. 상식과 지식이 충돌하는 사회다.

"요즘은 정부 정책에 박수를 보내거나 찬성하면 무식하고 꼴통이라는 말을 듣기 쉽다. 비판과 반대를 잘해야 지식이 있어 보이는 추세다. 그러니 아무리 박수치고 찬성하고 싶더라도 속에 묻어두고 기회를 봐야지 잘못 나섰다가 무식한 학자로 찍히면 수강생이 다 떠나버려."

필자에게 해준 누군가의 말이다. 식자우환이다. 공부 많이 한 사람은 북에서도 거짓말 남에서도 거짓말이니, 통일이 되면 남북 지식인들이 서로 어떤 거짓말을 할지 그 모양새가 궁금하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