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란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지만 약자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법의 내용이 부당할 때도 있지만 법의 집행이 건전한 상식에 어긋나 정의를 훼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잘못된 법과 그 집행은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기에 법의 제정자나 집행자들은 통상의 주의의무를 넘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발붙일 수 없다.
대장동 김만배는 권순일 대법관을 8회 방문했다. 전원합의체로 넘겨진 다음 날 만났고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린 다음 날도 만났다. 무슨 말이 오갔을까. 대법관 면담은 청사 입구에서 비서실에 전화로 확인한 후 이루어진다. 50억 기부에도 권대법관 이름이 올랐다. 그는 연세대 로스쿨 석좌교수인데 담당 과목이 법조 윤리라니, 씁쓸하다. 사법부 정의가 통째로 위협받고 있다. 법의 타락이다.
헌법재판소는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을 각하했다. 심리중 임기 도래로 퇴직하였기에 심판 대상이 될 수 없어 각하된 것이다. 당연한 논리인데 임기 도래가 분명한 상황에서 탄핵 심판청구를 강행한 여당과 이에 협조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한마디 사과도 없다. 판사와 검사까지 탄핵 등으로 겁박한다. 법의 타락이다.
검찰개혁이라고 하면서 인사권 남용을 통해 검찰의 중립을 훼손하고 권력을 충견으로 만든다. 또 언론개혁이라고 하면서 언론에 재갈을 물려 권력에 대한 비판을 원천 봉쇄하려 한다. 5·18 왜곡금지, 제주 4·3 왜곡금지 등 각종 왜곡금지법이 넘치고 있다. 법의 타락이다.
역대 정권마다 친여 성향의 판사나 검사가 늘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하에서는 친여 성향의 판사나 친정권 검사라는 언론의 표현이 유독 많다. 판검사는 법 집행의 상징인데, 재판과 기소가 성향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법의 타락이다.
1988년 독일의 뤼터스 교수는 ‘타락한 법’에서 나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교수와 판검사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판사는 존경의, 검사는 정의의 상징인데 이름값 못한 지 오래됐다. 권력에는 돈이 수반되고 권력은 명예까지 탐하는 속성이 있다. 권력, 돈, 명예 중 둘 이상을 가져서 안 되는데 모두 가지려 하니 탈이 난다. 성경은 인생을 아침 안개와 같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