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산 지 벌써 15년이 됐다. 내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은 2005년 늦가을이었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줄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인터넷으로도 접하지 못했다. 내가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친구 제임스가 알려준 지식이 전부였다. 그는 "한 1년 정도 잘 먹고 지내기에 딱 좋은 곳이야." 라고 말했다. 모험을 떠나야 하겠다는 느낌이 왔다. 나는 아랍에미리트의 수도인 아부다비를 떠났다. 아부다비는 모든 것이 편리하고 잘 정비되어 있고 노동환경도 좋은 곳이었다.
내가 왜 지구 동쪽에 자리한 한국이란 곳을 가고 싶었을까? 그곳은 아마도 태국이나 필리핀 같을 거야. 쓰레기더미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어디를 가든지 강도나 사기꾼을 조심해야 하는 나라로 생각했다. 내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며칠 후면 사흘 연휴의 명절이 시작된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나는 연휴 동안 지인을 만날 준비를 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막막했다.
새벽 2시 인천공항에 내려 첫발을 디뎠다. 출입국관리소를 향해 가면서 이곳이 아시아의 공항이 맞나 의문이 들었다. 내가 두바이공항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야,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 혼잣말을 했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버스 정류장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었지만 혼란스러웠다. 혼자서는 결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버스정류장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내 옆으로 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었다. "저는 이태원 가는데요, 버스 어디서 타야 하나요?" 라고 물었다. 그 여성은 달려가 버스 노선도를 확인하더니 그녀 자신을 따라 오라고 했다.
나는 결코 그녀의 얼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한국에 대해 불쾌한 마음이 들까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마치 미션을 수행하는 것처럼 걷고 또 걸어 꾀나 먼 버스정류장까지 나를 데려다 줬다.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남기고 반대편 공항 쪽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녀의 행동이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무엇이 그 여성으로 하여금 이런 친절을 베풀게 했던가. 완전히 낯선 이방인에게 버스정류장에 가는 길을 찾도록 도움을 주는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여성의 직업이 길 안내하는 일이 아닌데 말이다. 또 다음과 같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도심 교통이 어쩌면 이렇게 원활할까? 차량 행렬이 질서정연하고 도로가 넓고 깨끗한 이유는 뭘까? 쓰레기더미와 거지와 약쟁이는 어디에 있는가? 나의 한국 정착기는 이러한 나의 궁금증들을 하나둘씩 풀어가는 현재진행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