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직후 권좌를 물려받은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약관 27세에 권좌에 오른 김정은에 대해 세상은 허황된 망상을 가졌었다. 젊으니까 선대와 달리 개혁 개방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이며, 특히 스위스 유학파이기 때문에 자유 세계의 정치, 경제 논리의 우수성을 알고 있을 것이며 외국어에도 능통하기에 국제적인 규범을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이같은 기대가 망상임을 알게 되는데 일 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김정은은 나이가 어리다는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김정일, 김일성보다 훨씬 악질적인 공포정치를 단행했다. 정권 2인자이며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고사포로 처형하고 다 찢어진 그의 시체와 핏자국을 화염방사기를 쏘아 말려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임기 일 년차인 2012년,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의 생존 대신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미사일과 핵 개발에 몰두했다. 거기에 쓴 돈이 무려 13억 달러였다. 옥수수로 환산할 경우 460만 톤을 사올 수 있는 돈이며 북한 주민이 4-5년 먹고 살 수 있는 양이었다. 자신의 연설 중 졸았던 대장급 장군, 김정일 애도 기간 중 술을 마셨던 대장, 전기가 모자란다고 투정한 최고위급 관리 등을 닥치는 대로 죽여버린 김정은은 이제 자신의 목숨도 담보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
북한의 원천적 딜레마는 정권이 사는 길을 따르면 북한이라는 나라가 멸망의 길로 가게 되고 북한이라는 나라를 살리자면 정권이 종식될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물론 김씨 왕조는 자신의 정권이 사는 길을 택했다. 식량 대신 핵과 미사일을 개발한 것이다. 핵과 미사일로 미국의 도시 하나라도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날, 정권의 생존을 담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과 미사일 능력이 점차 현실화되는 즈음 김정은에게 새로운 딜레마 하나가 더 생겼다. 미국이 결코 북한의 핵미사일에 의해 자신의 도시가 궤멸될 수 있는 상황이 오게 됨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를 위해 수직으로 세우는 경우-그것이 비록 실전용이 아닌 실험용이라 할지라도- 선제 타격해서 파괴해 버려야 한다는 군사교리를 개발한 것이다. 죄 많이 지은 김정은의 업보가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