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제껴두고 어떻게 우크라이나에서의 ‘아마겟돈’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아마겟돈 발언과 관련해, 결국 이런 질문은 안 나온 모양이다. 존 커비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이 "러시아가 무엇을 하든 미국의 대응엔 변화 없다"고 한 것으로 미뤄, 바이든 대통령 발언을 신중히 따져 보긴 한 것 같지만.
김정은의 한·미·일 핵공격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일 일만큼이나 상상하기 쉽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핵탄두가 푸틴에겐 약 6000개, 김정일에겐 60개. 양쪽 다 위험하고 불가측하다.
퇴역 해군 제독 마이클 멀렌 전 합참의장 말처럼,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고자 전술핵 사용을 결정할 가능성은 5년 전보다 높아졌다. 김정은도 푸틴에 힌트를 얻은 게 분명하다. 푸틴의 절대권력과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심지어 러시아를 위해 수천 명 파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한편, 미사일 실험을 북한 핵프로그램과 연결시켰다. 그게 실제 발사로 이어졌다. 조선중앙통신은 "하나 하나가 전술 핵탄두 장전 시뮬레이션"이라고 공언했다.
김정은은 핵보유를 과시하면서도 발사 미사일들 사이의 관계를 비밀에 부쳐왔다. 대도시를 초토화할 전략적 타격이 아닌 세밀화된 목표물의 공격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호를 중심으로 동해안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고 있을 때 북한은 핵무기를 입에 담았다. 북한 전투기와 헬리콥터가 인근 해역에서 구축함·보급선·순시선이 기동하자 상공을 날아다닌다. 이번 훈련은 북한이 일본 쪽으로 극초음속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바이든은 김정은의 핵위협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훨씬 더 걱정하고 있다. 한반도 상황의 심각성을 부차적 순위로 밀어내며, 지구 양쪽에서 전쟁을 해야 할 위험성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것 아닌가 싶다. 여러 차례 한국 방어를 위한 태도를 천명한 바이든이지만, 두 번째 한국전쟁의 무서운 전망에 대해선 자세히 생각하지 않는 편을 택한 듯하다.
소련 시절 이오시프 스탈린이 공군력뿐만 아니라 중화기와 탄약을 가지고 6·25전쟁 때 지원해 준 것처럼, 김정은은 러시아의 푸틴도 북한을 지원하리라 믿는 것일까. 김정은은 또 북한이 중국의 지원에 의지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다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남북한 양쪽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나, 북한 쪽엔 군사적 행동보다 인내할 것을 조언했으리라 본다.
커비 대변인은 이런 맥락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한 뒤, 미국이 북한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상투적인 태도로 물러섰다. "미국은 언제든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존의 요구를 고수한다." 커비 대변인의 논평이 전혀 쓸모없고 무의미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적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고 김정은이 수차례 표명한 바 있다. 둘째, 북한은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요구를 일체 고려한 바 없다. 게다가 남한에 대한 핵공격 허용을 이미 법제화한 마당이다. 이런 북한이 어떻게 미국 주도의 비핵화 대화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미 고위 관리들이 성공을 거둘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전쟁 가까이에 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한국이 F-35를 띄우자, 북한에서는 150대의 비행기를 띄웠다. 북한 역사상 최대 규모다. 만약 김정은이 전술핵 사용의 필요성을 확신한다면 어찌 될까? 우크라이나 혹은 한반도에서 푸틴과 김정은 누가 먼저 나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