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통신] ‘식민지’ 사죄 안한 英 여왕, 사죄 안 끝난 일본

2022-09-21     도널드 커크 前 USA투데이 편집인
도널드 커크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를 둘러싼 풍경은 영국 왕실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 재위 기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제국의 마지막과 영연방(British Commonwealth)을 이끌었다. 수백만 명이 여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 영국 왕실은 아프리카·아시아·신대륙 등지에서 벌인 식민지 만행에 대해 사죄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은 일본을 향한 끈질긴 사죄 요구를 상기시킨다. 일본은 중국·한반도와 동남아시아를 아우른 ‘대동아 공영권’을 추진하며 저지른 잘못에 대해 끊임없는 사과 요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사죄로 과거의 참상을 돌이킬 수 없다. 사죄로 당시 피해를 당한 나라와 사람들이 겪은 비극을 완벽하게 보상할 수는 없다. 오히려 거듭된 사죄 요구는 일본과의 군사·외교·통상 등 협력에 걸림돌이 된다. 한일관계가 그 본보기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 국교 수립 및 청구권 협약으로 식민지시대 문제를 정산하고 수십 년 동안 호혜적 발전을 이뤘다. 그럼에도 한일관계는 지난 정부 동안 심하게 훼손됐다. 한국이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처분해 징용공배상 문제를 해결하려 하자 일본은 반발했다. 심지어 사죄하면 할수록 한국의 태도가 강경해진다고 여기는 일본인이 늘었다고 한다.

반면 엘리자베스 2세는 사죄를 고려한 적이 없어 보인다. 제국주의 대영제국으로의 회귀를 옹호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여왕이 영연방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대영제국의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는 것은 우스꽝스런 모양새였을 것이다. 사죄란 이견을 해소하기보다 역사적 컴플렉스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몇몇 비평가들은 엘리자베스 2세가 사죄했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도를 비롯해 한때 영국의 식민지로 있던 나라들은 한국이 일본에 하듯 집요하게 사죄를 요구하지 않는다.

물론 영국 국왕과 일본 총리의 역할에 차이가 있다. 영국 왕족들은 실권이 거의 없다. 정부는 수상이 통치한다. 수상이 국왕에게 주요한 정책 결정에 대해 보고하지만, 국왕이 정치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 국왕은 국가의 통합성을 상징하며 추앙될 뿐이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충성심을 고무시키는 역할에서만 가치가 발휘되는 것이다.

일본 왕실 역시 1945년 8월 15일 항복 이후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지위로 조정됐다. 당시 그 유명한 항복문서를 읽은 것도 히로히토 천황이었다. 히로히토는 미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러 전함 미주리호에 직접 나타났다. 엘리자베스 2세와 마찬가지로, 히로히토를 비롯한 일왕들은 일본 제국주의 역사에 대해 사죄하지 않았다. 반면 역대 일본 총리들은 사죄 요구에 시달렸다. 그들이 누차 그런 뜻을 밝혔음에도, 늘 ‘진정성 없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사죄와 사죄 요구는 한국과 일본 사이 다양한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됐다.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은 전임자와 달리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성의를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문재인 정부 시절 권력자들, 오피니언 리더들과는 다르다. 그들로 인해 표출됐던 반일감정을 확실히 누그러뜨리고 있다.

윤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은 의미가 크다. 영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는 또한 엘리자베스 2세가 자국민과 세계 다른 나라들에 보여 온 자세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었으면 한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과 구(舊)식민지 국가들의 관계를 개선하거나 진전시키는 데 ‘사과’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무의미한 사죄를 하는 대신 ‘조화·협력’를 장려함으로써 평화와 선(good-will)을 옹호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