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 열기...脫문학 시대에 문학의 존재 의미 찾는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8505편 응모 의미 한국문학의 앞길 어둡지만은 않아...日은 80년대에 '문학의 종언' 선언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5529편을 비롯해 7개 부문 8508편의 응모작이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내년 1월 1일 당선작 발표). 단편소설 637편·시조 538편·동시 1401편·동화 258편·희곡 110편·문학평론 35편이다.
영화·드라마가 서사 장르의 주류를 이루는 후기산업사회의 일반적 경향에 비해, 이례적인 ‘문학 열기’가 아닐 수 없다. 그 배경은 전문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언어의 역사는 고스란히 그 나라 정신의 역사다. 지구상 수천 개 언어들 가운데 문학·학술이 가능한 상태로 발전한 언어는 우리말을 포함해 40개 미만이며, 수십년 만에 이 수준으로 성장한 예는 우리말 뿐이다.
우리나라 언론사의 신춘문예상은 약 40개.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가 사회 전체의 주목을 끌던 시절이 있었다. 근대화(산업화) 단계를 거치는 사회의 특징이다. 그 시기를 지나면 영화·드라마 같은 영상물이 대세가 된다. 문학은 영상 작품들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위치로 물러나는 게 일반적이다. 문학의 대중성과 예술성이 세계문학사 특히 동아시아 근대문학에선 오랜 논쟁거리였으나, 이제 그런 구분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일본은 80년대 ‘문학의 종언’이 고해졌다. 문학과 문예비평가가 더 이상 세상을 해석하는 지식인의 정점을 차지하지 못하게 됐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탈(脫)문학 시대에 ‘문학의 존재의미’를 모색하는 나라일지 모른다. 철지난 문제가 아니다. 언어의 성숙 발전도는 그 나라 사람 전체의 언어적 표현력과 미의식으로 이어지며, 종국엔 민도에 영향을 준다. 그 중심에 있는 게 문학이다.
동북아 주요 3개국 가운데 일본이 2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냈고, 중국은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한 작가가 수상했다. 우리나라만 아직 이 상과 인연이 없다. 노벨상 가운데 가장 공정성 시비가 있는 게 문학상이긴 하다. 작품성 외 다양한 배려가 이뤄지며, 주요 언어로 번역되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당장 큰 변화가 있긴 어렵지만, 한국문학의 앞길이 어둡지만은 않다. 인류에게 영감을 줄 만한 사유와 체험의 깊이를 더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이달 초 마감된 조선일보 신춘문예엔 사람 아닌 아파트가 주인공인 작품이 있는가 하면, 부동산·메타버스 등 세태를 반영한 작품이 많았다. 교류 없는 ‘코로나 고립’에 대한 묘사, 일상에 침투한 우울·공포, 실제 삶보다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서의 관계성·개성이 중요한 MZ세대 생활상도 눈에 띈다.
일상에서 희미해지는 ‘살아있음’의 포착에 안간힘을 느끼게 하는 시, 만년에 남은 삶의 전망을 살펴보는 시들이 많았다고 예심 위원들은 말했다. "전반적으로 비관적 기색" "타인에 닿으려는 열망"을 비롯해, 인공지능(AI)·인체냉동술·메타버스 같은 첨단기술을 시 소재로 끌어들인 경우가 많아진 점 또한 특기할 만하다. 다만 "소재의 특성을 넘어서는 시적 발견은 부족했다"는 평이다.
단편소설 부문에선 온라인과 가상현실을 통해 새롭게 구성되는 삶을 다룬 작품이 많았다. 소설 속 사회 초년생 화자에겐 직장 내 질서보다 소셜미디어에서의 인간관계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평가가 중요하다. 직업인보다는 동호회·취미 활동을 하는 주인공들이 두드러진다. 중고 거래 등 온라인 서비스와 코로나 비대면 생활을 통해 이웃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었다.
대단지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과 교류 없이 폐쇄된 상황의 묘사가 많았다. 부동산 문제를 다룬 다수의 작품들 중엔 집과 공간이 주인공인 소설도 등장했다. "새로운 사회상과 인물상을 그려내고 있다"는 총평이다. 문학이 여전히 인간의 삶과 시대상을 그려내고 있음을 말해준다. 영상과는 다른 문자세계 특유의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