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공화당원인 '리노' 권력에만 취해 야당임을 포기한다
[손태규의 미국 이야기] ③ 리노(RINO) 대 디노(DINO)
지난 10월 세상을 떠난 미국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의 합참의장, 국무장관을 각각 역임했다. 공화당 대통령이 출세시킨 공화당원이었다. 그런데도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를 연거푸 지지했다. 조 바이든 후보도 지지했다. 그는 ‘리노’라 불린다.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한때 가장 유력했던 대통령 후보였다. 오바마 재선을 막는, ‘공화당의 쥴리어스 시저’가 되리란 기대를 모았다. 그는 정치인과 공직자 부패 척결로 유명한 검사. 그 명성으로 2009년 주지사에 당선된 뒤 교원노조 무력화 등 강력한 우파 정책을 폈다. 지지율 77%까지 기록했다. 그러나 대선 출마를 거부했다. 대신 오바마를 칭찬하며 우파의 정체성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오바마 이후를 겨냥, 이른바 ‘빅 텐트’ 전략을 구사했다. 사상과 이념을 뛰어넘는 인물임을 과시했다. 정책 기조도 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좌파들의 호감을 얻으려 노력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초청에 응하고, 오바마와 해변에서 공놀이를 함께 하는 등 친밀도를 자랑했다. "중도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파는 회색주의로 돌아선 크리스티의 ‘빅 텐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16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중도 포기했다. 이제 24년 대선 후보군 20여명에도 끼지 못할 정도. 정치적으로 거의 몰락한 상태다. 그 역시 ‘리노’라 불린다.
민주당 대통령 지명 판사나 민주당 지지로 당선된 판사들은 대부분 민주당 노선에 따라 판결한다. 그러나 공화당 판관들은 정반대이다. 조지 부시 지명의 연방대법원장 존 로버츠는 "우리는 오바마 판사 또는 트럼프 판사, 부시 판사, 클린턴 판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공화당 지명 판관들은 늘 당파 색을 부인하면서 자주 민주당 지명 판사들에 동조하는 결정을 내린다. 좌우가 격렬하게 싸우는 사안에 대한 판결이 이뤄질 때마다 우파들은 그들의 ‘배신’에 애를 태운다. 그들 역시 ‘리노’ 또는 ‘시노’로 불린다.
‘리노’는 미국정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용어의 하나.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거나, 민주당 노선을 자주 따르는, "오직 이름만 공화당원(RINO: Republican in name only)"을 일컫는다. 워싱턴의 골프장에서 노닐 다가 투표 때면 달려와 민주당 법안에 찬표를 던지는 의원, 부패하고 허약하고 권력에만 취해 야당임을 포기한 의원들이 ‘리노’로 불린다. 타협하는 유연한 정치인이라고 하나 좌파와 싸우길 싫어하는 정치기회주의자 또는 정치철새들이다.
"무늬만 보수주의자"를 가리키는 ‘시노(CINO: Conservative in name only)"도 마찬가지. 늘 좌우를 다 기웃거리며, 굳이 보수주의자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지식인, 법조인들을 말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정치계산을 먼저 하는 사람들이 ‘리노’ 또는 ‘시노’들이다. 이들은 같은 우파들 사이에서 공격하고 비난할 적을 찾는다. 좌파들 사이에서는 친구를 찾는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그들을 믿지 않는다. ‘리노’나 ‘시노’의 역사는 1백년이 넘는다. ‘리노’ 원조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26대 대통령으로 꼽힌다. 공화당에서 출발했으나 노선을 급변, ‘진보정당’을 만들었다.
"이름만 민주당원 또는 좌파"를 의미하는 ‘디노(DINO: Democrats in name only)’의 역사도 1백년이 넘는다. 그러나 미국정치에서 이 말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도 의아해 한다. "진보적 성향은 그들의 진실성, 순수성을 위한 좌우명이 되었다." 즉 좌파들은 자신들의 사상과 신념을 지키는 것은 자신들이 그만큼 순수하고 진실하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다는 것. 그런 아집 때문에 변절자나 정치철새가 우파보다 훨씬 적으며, 우파보다 단결력, 투쟁력이 월등하다는 것이다.
미국 우파들의 숙원은 ‘리노’나 ‘시노’를 제거하는 것이다. 미국의 운명을 건 심각한 좌우투쟁에서 그들 때문에 늘 실망하고 좌절하기 때문이다.
미국에만 ‘리노,’ ‘시노’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판 ‘리노’가 바로 ‘국민의 힘’이다. 무늬만 야당 짓을 하고 있으니 여권이 후안무치, 안하무인이 되는 것이다. 평생 자본주의 삶을 살면서도 좌파정책에 동조해야 균형 인이 된다고 착각하는 ‘시노’ 지식인들이 널려있다. 그러니 종북좌파, 부패좌파들에게 혹독하게 당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