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수준이 정부의 수준

2025-11-26     홍승기 변호사 법무법인 신우
홍승기

이맘때면 로스쿨은 신입생 면접시험으로 분주하다. 토요일 이른 아침에 집합해서 막 출력된 대외비 면접 문제를 앞에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동료 교수들이 합숙을 하며 머리를 싸매고 만든 문제이고, 이미 인쇄까지 끝났음에도 매년 벌어지는 ‘정겨운’ 소란이다.

로스쿨 도입 당시 인가 요건을 맞추고자 끌어모은 실무 교수들이 이제 거의 정년 전후이다. 옛 동료들이 궁금해서 투덜대면서도 운전대를 잡았다.

묵직한 문항은 유능한 후배들에게 떠넘기고 분위기 전환용 ‘자유 질문’을 맡았다. "내 인생의 책은?" 의외로 학생들의 말문이 막혔다. 다행히 1970년작 박완서의 첫 소설 ‘나목’(裸木)이 등장했고, 겨우 일본 추리소설과 하버드 로스쿨 교수의 에세이집이 뒤를 이었다.

다수는 아예 입을 뻥끗 못 하거나 수업교재와 자기계발서 사이에서 쩔쩔매는 모습이었다. 몇 년 전에도 같은 질문을 했더니 답이 엉뚱했다. "그건 자기계발서 아닌가?" "저는 세 번 읽었습니다." 너무나 당당해서 더는 시비 걸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학원을 다니며 훈련을 받아서인지 짧은 시간에 문제를 읽고 ‘말’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탁월하다. 그러나 딱 그만큼이다. 뒤집어서 질문하면 바로 주저앉는다.

어쨌든 15분 문답으로 한 인물의 인생을 평가하기는 너무나 위험하다. 이런 식의 면접에서는 뻔뻔한 DNA가 승자가 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면접점수를 계량화하는 데 반대한다.

인생에 가장 영향을 준 책이 대학의 ‘수업교재’ 아니면 ‘자기계발서’가 되었다. 무지하고 거친 위험사회의 전조(前兆)이다. 히틀러는 독일 시민의 환호 속에서 탄생했다. 히틀러 시대, 독일을 망친 적(敵)은 다수 독일 시민이었다.

‘내란 수괴’라는 현수막이 전국에 걸리면 졸지에 대통령이 내란죄 우두머리로 각성된다.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솔선해서 ‘헌정중단’을 이루어낸다. 몇 년 전에도 그랬다.

시민은 그에 걸맞는 정부를 가진다. 국회도 법원도 시민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1958년 8월호 <사상계>에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가 실렸다. 여운이 긴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