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안이 되어가는 대한민국 경찰

2025-11-25     강병호 배재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강병호

인터넷 매체 ‘고양 in’에 따르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북촌의 한 건물주는 자신의 건물 외벽에 부정선거 의혹과 정권 비판, 중국 자본 침투 경계 문구를 담은 대형 현수막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긴급 체포됐다. 체포 순간 건물주가 "제가 누구를 명예 훼손했습니까?"라고 묻자, 담당 경찰관은 "그건 모르겠다"고 답했다.

‘피해자 특정’이 필수인 명예훼손의 기본 요건조차 충족되지 않은 채 체포가 강행된 사실은 매체의 공개 영상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출석 요구를 받은 적이 없는데도 체포영장에는 ‘출석 요구 불응’이 적혀 있었고, 경찰은 건물주의 동선을 미리 파악한 뒤 잠복해 체포를 집행했다. 법 집행의 절차 무시가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번 사건이 충격적인 것은 그 방식이 이미 중국과 홍콩에서 반복돼 온 공안적 통치 패턴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1일 홍콩의 국가보안법시행 첫날, 홍콩 시민 통잉킷(唐英杰)은 ‘광복 홍콩 시대 혁명’ 깃발을 꽂고 주행했다는 이유로 체포, 2021년 7월 국가 분열 선동과 테러 활동 혐의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도, 물적 피해도 없는 정치적 표현이 국가안보 위협으로 과장된 사례다.

중국 본토에서는 2015년 7월 9일 소위 ‘709 대대적 구금’이 벌어졌다. 인권변호사 왕위(王宇)·왕취안장(王全璋)·저우스펑(周世鋒)·리허핑(李和平) 등 300여 명의 변호사와 활동가가 국가 전복 또는 국가 전복 선동 혐의로 일제히 연행됐다. 이 죄명은 특정 폭력행위가 아니라 정부 비판 활동 전반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데 사용됐다.

또 2008년 쓰촨 대지진의 부실 공사 의혹을 조사했던 시민활동가 탄쭈어런(譚作人)은 2010년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공권력이 비판적 표현을 체제 위협으로 규정해 처벌한 대표적 정치재판이었다.

한국 북촌 사건은 이와 놀라울 만큼 닮았다. 첫째,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명예훼손이 적용됐다. 둘째, 공직선거법 어디에도 명확히 존재하지 않는 ‘부정 선거운동죄’가 체포영장에 포함됐다. 셋째, 출석 요구 절차 없이 ‘출석 요청 불응’ 사유가 영장 청구에 사용됐다. 넷째, 긴급성이 전혀 없는 사안임에도 긴급체포가 이루어졌다. 현수막은 이미 올해 5월부터 6개월 동안 게시돼 있었고, 신고가 여러 차례 접수됐음에도 경찰은 아무 조치를 하지 않다가 갑자기 체포를 단행했다.

이 사건의 본질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 법 집행 절차의 문제다. 절차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며, 절차 없는 공권력은 언제든 권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홍콩과 중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한 번 무너진 절차는 돌이키기 어렵다. 이번 북촌 사건은 작은 예외가 아니라 법치주의의 경계선이 흔들리는 심각한 위험 신호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