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물에 갇힌 ‘대왕고래’

2025-11-25     이정민 청년기업가
이정민

한국 자원 개발 역사에서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로 꼽히는 동해 심해 가스전,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단순한 탐사사업이 아니었다.

동해 해역의 잠재적 가스·석유 매장량을 확보해 에너지 자립을 강화하고,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에너지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전략적 국가사업이었다. 윤 정부 시절 한국석유공사는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과 협력을 추진하며, 동해 심해 자원의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현실화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특히 주목할 점은 두 번째 탐사 시추에 글로벌 석유기업 BP가 공동개발 우선협상대상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BP는 세계 최고의 심해개발 기술력을 가진 기업으로, 우리가 독자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심해 탐사·개발 경험을 갖춘 최고의 파트너였다. 업계에서는 ‘BP가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지질·데이터·잠재성을 인정했다는 신호’라며 기대를 걸었다. 실제로 BP의 참여는 그동안 한국이 겪어온 ‘자원개발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기술·자본·경험을 결합한 새로운 도약의 시작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정권 교체가 되며 문제가 발생했다. 윤 정부가 추진한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대해 민주당은 사업 전반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에 호응해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다. 정권 교체와 동시에 사업은 국가 산업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의 한복판으로 끌려 들어갔다. 결국 자원개발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인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정치권의 압박과 잇따른 감사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최근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현재, 마지막 단계인 정부의 광권 계약 승인 절차가 한 달 넘게 멈춰버렸다. 석유공사가 조광권을 BP에게 양도하기 위해서는 산업부장관 승인이 필요한데 이게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 파트너십에서 ‘승인 지연’은 곧 ‘정부의 사업 의지 없음’으로 해석될 수 있다. BP와 같은 글로벌 메이저 기업은 국내 정치 리스크, 행정 지연 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산업부가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이 계속 보류한다면, BP뿐만아니라 다른 메이저 기업들과의 국제적 신뢰도 무너진다. 유전 개발 사업은 그 자체로도 커다란 리스크인데 여기에 정치적 리스크까지 감당할 글로벌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정치가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역대급 고환율로 원자재·에너지 수입 비용이 치솟고, 기업들은 비용 압박에 신음하고 있다. 에너지의 95%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나라가 스스로 자원 개발의 문을 걸어 잠그면, 환율 충격은 더 크게 국민경제를 때릴 수밖에 없다.

멈춰선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한국에 유전이 없다’는 과학적 증거가 아닌 ‘한국 정치의 그물에 갇혔다’는 현실의 상징이다. 고환율을 헤쳐 나갈 자원주권의 칼도, 환율을 방어할 방패도 지금의 정부 손에는 보이지 않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