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처분 대입 취소, 명확한 기준부터
최근 김영호 의원실에서 충격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지난해 대입 전형에서 학교폭력(이하 학폭) 처분이 확인된 지원자 397명 중 약 75%에 해당하는 298명이 학폭을 이유로 대학 입시에서 불합격 처분을 받았다. 수시 모집에서는 370명 중 272명이(73.5%), 정시 모집에서는 27명 중 26명(96.3%)이 불합격했다. 수능 성적 중심의 정시에서도 학폭 감점이 합격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주요 대학에서도 불합격 사례가 확인됐다. 서울대는 정시에서 2명, 연세대는 수시에서 3명이 학폭 이력으로 감점을 받아 합격하지 못했다. 한양대(12명), 서울시립대(10명), 동국대(9명), 경희대·건국대·성균관대(각 6명) 등도 학폭 이력이 평가에 반영됐다. 작년에는 학폭 반영이 대학 자율이었지만 올해는 모든 전형에서 의무화되는 만큼 탈락 사례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학교폭력은 피해 학생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행위다. 따라서 가해 학생에게 책임을 물어 입시에서 결정적인 불이익을 주는 것 자체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된 실제 사례를 보면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최근 초등학교 3학년 A학생이 친구들 싸움을 말리려다 오히려 가해 학생으로 규정되어 학교폭력위원회 처분을 받았다. 과거의 학폭처분과는 다르게 요즘은 가벼운 욕설, 경미한 상처, 정당한 상황에도 학폭처분으로 판단된다. 이런 상황이 납득이 가는가?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고3인 B학생이 C학생을 상대로 고문에 가까운 괴롭힘을 자행했다. C학생은 B학생의 괴롭힘을 막는 과정에서 B학생 팔에 경미한 상처를 냈다. 추후에 이것이 발각돼 B학생은 학폭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B학생 부모는 피해자인 C학생을 학폭처분의 가해자로 신고하고, B학생의 학폭처분을 취소하는 행정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이에 학교는 C학생 역시 학폭처분을 내렸지만 C학생의 부모는 재력이 충분치 않아 소송을 제기하지 못했다.
현재 대학의 제도하에서는 친구의 싸움을 말리려던 A학생과 고문에 가까운 학폭을 당한 C학생은 학폭 가해자로서 대학에 떨어지게 된다. 반면 악독한 가해자 B학생은 행정소송을 제기한 덕분에 학폭처분을 연기시켜 대학에 떨어지지 않게 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대학 진학이라는 중대한 인생 이정표에서 학폭 사실이 미치는 파장은 매우 크다. 위 사례처럼 극단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단순한 갈등이나 미약한 충돌조차 ‘불합격’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이는 학생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처분이 된다.
물론 본래 목적인 피해 학생 보호와 가해 학생 책임 물음이라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좋은 제도지만, 위 사례처럼 회피하거나 악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 역시 사실이다. 결국 대학의 자의적인 학폭 퇴학 규제는 힘없는 피해 학생을 보호하려는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들을 옥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학폭자 퇴학 제도를 막연하게 운영하기보다는, 명확한 기준을 바탕으로 확실한 팩트가 확인될 때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 억울한 피해자를 되레 처벌하는 아이러니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