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廣場] 디지털 감시는 총보다 빠르게 자유를 침식한다
이재명 정권은 최근 약 75만 명의 공무원을 사실상 감시 대상으로 삼는 디지털 검열 체제를 공식화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전후 10개월 동안 중앙부처와 산하기관 공무원들의 휴대전화 기록, 메신저 로그, PC 사용 내용 등까지 조사할 수 있는 방침을 내놓았고, 각 부처에 전담 TF와 제보센터 설치를 지시했다. 제출을 거부하는 공무원에게는 대기발령, 직위해제, 수사 의뢰까지 가능하다는 지침까지 덧붙였다.
국무조정실은 "자발적 동의 없이는 조사할 수 없다"라고 해명했지만, ‘동의를 강제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이상 이는 책임 회피에 가깝고 사실상 강제 제출과 다르지 않다. 이 조치는 단순한 행정 점검이 아니라 국가가 75만 명 공무원의 일상·사생활·통신 정보를 언제든 열람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열어둔 것이다.
이 상황은 자연스레 20세기 전체주의의 상징인 스탈린 시대의 감시·숙청 체제를 떠올리게 한다. 1937~38년 대숙청 동안 약 95만~120만 명이 처형됐고, 이후 공개된 KGB 문서 및 연구들은 전체 희생자가 1천만 명을 넘는다는 추정치를 제시한다. 그 시절 소련에서는 이웃이 이웃을, 학생이 교사를, 동료가 동료를 밀고했으며, 공동 주거지의 얇은 벽 너머 대화까지 NKVD(내무인민위원회, 비밀경찰)에 전달됐다. 그러나 그 잔혹한 체제조차 우편·전보·제한적 전화 감청에 의존했을 뿐 전 국민의 통신·행동·심리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기술적 능력은 없었다. 감시는 잔혹했지만, 기술은 후진적이었다.
반면 지금의 한국은 스탈린 시대를 능가할 기술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 보급률 97%에 달하고, 사실상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개인은 하루에 메시지·통화·사진·검색 기록 등 수천 건의 디지털 흔적을 남긴다. 스마트폰은 인간관계·정치 성향·정서·취향·의사결정 패턴까지 포괄하는 ‘완전한 사생활 저장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데이터를 정권이 요구·수집·조사하겠다는 것은 개인의 삶 전체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평가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기술이 감시 능력을 제한했지만, 오늘날 AI 기술은 감시를 완성한다.
이 위험성을 수치로 가늠해 보기 위해 공무원 직렬 중 하나만 예로 들어 보자. 교사·교육직 공무원이 일반 국민과 비슷하게 하루 평균 통화 2~3회, 메신저 메시지 20~25건을 주고받는다고 가정하자. 1인당 통화량이 하루 2~3통이면, 해당 직군 규모가 15만 명일 때 하루 통화량은 약 30만~45만 통이 된다. 통화 1건당 평균 2분으로 잡으면 하루 총통화 시간은 약 60만~90만 분, 즉 1만~1만5000시간에 이른다. 메시지는 훨씬 더 많다. 하루 1인당 20~25건을 주고받는다고 하면, 15만 명 기준으로 하루 300만~375만 건이 발생한다.
이것은 오직 하나의 직렬에 불과하다. 같은 가정을 75만 명 전체 공무원 집단에 적용하면, 하루 통화량은 약 150만~225만 통, 메신저 메시지는 최소 1500만~1875만 건으로 불어난다.
이처럼 보수적으로 잡은 평균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 동안만 쌓이는 데이터 규모조차 통상적인 행정 점검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정권이 광범위한 빅 데이터 정보 분석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전 국민 감시로 확장될 수 있고, 더 나아가 해외까지 감시 범위를 넓힐 수 있음을 암시한다.
더욱 심각한 점은 AI 기술이 특정인을 표적화하는 과정을 과거보다 훨씬 쉽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AI는 수천만 건의 메시지·통화·검색 기록을 패턴 분석해 개인의 정치 성향, 인간관계망의 구조와 영향력, 특정 시점의 감정 변화까지 자동으로 도출한다. 소셜 네트워크 분석은 인간관계의 강도와 영향력을 점수화하고, 자연어 처리 기술은 단어의 선택과 문장의 뉘앙스로 개인의 사상을 추정한다.
이러한 기술이 정권의 목적과 결합하면 무고한 사람을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자’로 조작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쉬워진다. 과거 스탈린의 NKVD가 밀고 수십 건을 모아야 했던 작업을 AI는 몇 초 만에 수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공무원 노조는 자신의 기본권이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모호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 정권에 대해서는 "내란 세력"이라고 하며 날선 성명을 내던 노조가, 정작 자신들의 휴대전화와 메신저가 감시되는 상황에서는 "절차가 공정하다면 협력하겠다"는 수준으로 비판의 강도를 낮추었다.
이는 노조가 지켜야 할 원칙과 대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며, 감시 체제 정당화에 편승하는 태도다. 공직사회의 침묵과 순응은 감시 체제의 제도화를 가속하고 결국 국민 전체의 자유가 침식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오늘날의 디지털 감시는 총칼 대신 스마트폰 제출 요구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스탈린 시대의 폭력적 숙청보다 더 은밀하고, 더 조용하며, 더 정교하다. 광범위한 디지털 흔적을 분석해 개인의 행동·신념·신앙까지 추적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위축되고, 발언은 사라지고, 자유는 음침하게 침식된다. 디지털 감시는 총보다 조용하고, 법보다 빠르고, 밀고보다 정확하다. 그래서 훨씬 더 위험하다.
스탈린 시대의 비극은 과거 역사가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에 주어지는 경고다. 75만 명 공무원 감시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디지털 검열은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전체주의적 통제 실험이며, 정권이 기술을 동원해 개인의 삶을 재단할 수 있다는 신호다. 기술과 감시가 결합하면 자유는 순식간에 껍데기만 남는다.
공무원은 이러한 흐름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하며, 어떤 명분으로도 국가가 개인의 통신과 사생활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기초적인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