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환율 두렵다"…정유·항공·철강·식품업계 ‘비상등’
국내 정유·항공·철강 등 주요 업종의 기업들이 원·달러 환율 고공행진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경영상황을 맞고 있다.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의 연평균 환율이 외환위기 시기를 넘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기업들도 장기 경영계획을 재검토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국내 정유업계는 연간 10억배럴 이상의 원유 전량을 해외에서 달러화로 사들이고 있어 환율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분기보고서를 통해 3분기 말 기준으로 환율이 10% 오를 시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약 1544억원 감소하는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유업계는 생산 제품의 절반 이상을 수출해 환율로 인한 차익을 얻고 있고, 중장기적으로도 파생상품 투자 등을 통해 ‘헤징(hedging·위험 회피)’에 나서고 있다.
항공업계 역시 환율 상승 영향을 많이 받는다. 통상 항공사 영업비용 중에서 가장 큰 약 30%를 차지하는 유류비를 비롯한 항공기 리스료, 정비비, 해외 체류비 등 고정 비용을 달러로 결제한다. 또 환율이 오르면 여행 심리가 위축되면서 항공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외화환산 손실 규모도 눈덩이 처럼 불어난다. 대한항공의 경우 올해 3분기 말 기준 순외화부채는 약 48억달러로, 환율이 10원 오르면 약 480억원의 외화평가 손실이 발생한다. 대한항공은 환율 대비 통화·이자율 스와프 계약을 맺는 등 일정 부분에 대해 헤지 전략을 실행해 영향을 완화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미국의 50% 부품관세 부과에 환율 급등 부담까지 져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수입 비용이 늘면 원가 부담이 커지는 데다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 철강 수요까지 위축되면서 원자잿값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여서 부담이 더하다.
다만, 대형 철강사들은 철강 제품을 수출해 벌어들이는 외화로 유연탄과 철광석 등 주요 원료를 사들이는 ‘내추럴 헤지’를 통해 환율 변동 영향을 최소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환율 흐름 변동에 대한 환위험 모니터링 강화, 시나리오별 전망을 통해 환율 변동성 확대가 경영 활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품업계는 원자재 가격 부담이 커지고 있다. 국내 식품 제조업의 국산 원재료 사용 비중은 31.8%로 밀, 대두, 옥수수, 원당 등 주요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롯데웰푸드는 3분기 보고서를 통해 원·달러 환율 10% 변동시 35억원의 세전 손익 영향이 있다고 공시했다.
CJ제일제당은 사업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하면 세후 이익이 13억원 감소한다고 밝혔다. 삼양식품은 라면의 주요 원료를 수입할 때 고환율 상황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수출 비중이 약 80%로 높은 만큼 부담이 상쇄되는 측면이 있다.
스타벅스를 운영하는 SCK컴퍼니는 원가 상승 영향에 따라 3분기 영업이익이 600억원으로 9.6% 감소했다. 스타벅스의 원가 상승은 커피 원두 국제 시세가 고공행진한데다, 강달러 기조가 지속하며 원두 수입 단가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화장품 업계는 원료를 수입할 때는 손해가 예상되지만, K뷰티 인기를 타고 증가한 수출에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환율 변동으로 인한 원재료 가격 인상 가능성에 대해 상황을 면밀하게 확인하면서 구매처 다변화 및 글로벌 사업 확장 등을 통해 환율 변동 리스크(위험)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원료 수입 때 발생할 수 있는 환차손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환율 변동에 따른 장기적인 대책도 마련 중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