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칼럼] 젠슨 황 26만 장 통큰 선물 자칫 못쓰게 될라

2025-11-19     이태현 공학박사
이태현

2025년 10월 30일 대한민국뿐 아닌 전 세계 사람들이 놀란 엄청난 일이 있었다. 세계 시가총액 1위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31일 APEC 2025 참석차 한국에 오는 김에, 하루 일찍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페스티벌에도 참석한다는 소식이었다.

필자도 없는 시간을 쪼개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젠슨 황은 엔지니어들에게는 록스타 같은 존재이기에 꼭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젠슨 황이 무대에 올라와 K-팝, K-드라마, K-뷰티 같은 단어를 외치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쯤 삼성 이재용 회장과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이 깜짝 등장했다. 현장 분위기는 정말 열광의 도가니였다. 영화나 소설, 조작된 AI보다 더 비현실적인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 전에 젠슨 황은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회장을 서울 삼성동 깐부치킨으로 불러내 함께 치맥을 즐겼다. 많은 청년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환호했다. APEC에 참석하는 어느 정상보다 젠슨 황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젠슨 황은 두 회장을 예정에 없던 엔비디아 25주년 기념행사 무대로 불러내 GPU 26만 장 공급을 약속했다.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없으면 AI 경쟁 자체가 어려운 시기에 삼성·SK·현대자동차·네이버 등에 26만 장이나 배정을 약속한 것이다. 전 세계의 빅테크 기업들이 구매하려 줄을 서고 있고, 기업뿐 아니라 나라 단위로도 사고 싶어도 못 사고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이다. 그런데 한국에 26만 장이라니, 약 15조 원 규모의 어마어마한 거래다.

젠슨 황으로 인한 흥분이 채 가시지도 않은 11월 초 서울대학교에서 이런 발표를 한다. ‘시흥시 배곧동 주민들의 반발로 사업을 중단한다.’

서울대는 지난 2017년 시흥을 미래융합연구단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AI·바이오·의료와 연구, 산업을 잇는 첨단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서울대는 12만㎡ 규모 부지에 배곧서울대병원 등을 지을 예정이며 병원 인근 부지에 240㎿급 AI 데이터센터를 신설하기로 했다. 10조 원이라는 자금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대 계획안이 공개되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데이터센터가 생명 위협 시설이라면서 거세게 반발했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 데이터센터를 초대형 전력 시설로 보았고, 전자파와 집값을 이유로 반발했다. 서울대학교는 부담을 느끼고 결국 계획안을 전면 중단했다. 젠슨 황이 26만 장을 준다고 해도 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 기회에 이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설명을 해야겠다. 서울대를 포함해 수도권 대학 대부분은 AI 연구에서 소외돼 있다. 전력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첨단 AI 연구를 하려면 데이터센터가 필요한데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그래픽카드다. 그래픽카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대한민국 최고의 공과대학 서울대·포항공대·카이스트에서 연구를 위한 H100 그래픽카드 한 개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중 으뜸이라는 카이스트조차 H100이 두 개 있다. 심지어 그 두 개도 중고다. 나머지 다른 대학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시흥 시민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무해하다는 보고서를 준다고 해도 찝찝할 수 있다. 집값에 영향이 있으니 반대하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시흥 AI센터가 좌초되면 다른 수도권 지역에 불러올 연쇄 반응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이미 KT 클라우드가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 구로구 등에서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부디 서울대와 정부에서는 시흥 시민들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고, 시흥 시민들은 대한민국 AI 발전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현재 상황을 생각해 보면서 원만한 합의점을 끌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