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칼럼] 정부는 순한 양 군인들을 이리로 바꾸려 하나
2004년 가을 한 월간지에 ‘군은 청와대를 어떻게 보나’라는 기획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서 현역 사단장 K소장이 "이제 한국에서 군사 쿠데타는 영원히 불가능하다"며 그렇게 판단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댔다.
첫 번째 보안 유지가 불가능하다, 두 번째 교통체증 때문에 병력 이동이 어렵다, 세 번째 핸드폰과 인터넷 등으로 무장한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 네 번째 더 이상 군이 한국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 아니다, 다섯 번째 이상 4가지 사실을 군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계엄이 곧 군사 쿠데타는 아니다. 하지만 군이 비상 상황을 이유로 평상시와 다른 기동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고 권력 창출과 유지에 복무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민주당이 지난해 12·3비상계엄을 ‘내란’으로 몰아가고 많은 국민이 거기에 동의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나아가 비상계엄은 20여 년 전 K소장의 ‘한국에서 군사 쿠데타는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당시 K소장의 분석은 지금도 유효할까?
쿠데타가 불가능한 5가지 조건은 더 강화됐다. 그리고 지난해 비상계엄을 보면서 지금 시대에 쿠데타가 불가능한 한 가지 결정적인 조건을 더 발견했다. 지금 대한민국 전군(全軍)을 뒤져도 쿠데타 병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병력을 1백 명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이 그것이다. 이것은 긍정적인 시그널이기도 하지만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것이야 당연하지만, 문제는 과연 우리 군이 정말 긴급한 상황에서 상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혐의로 수사를 받거나 재판에 넘겨진 군 장성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국민이 기본적으로 군 간부에게 기대하는 소신이나 용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적지 않은 국민이 ‘눈물 흘리는 군인들’을 보며 실망하는 이유도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고 투쟁해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이 군의 위험 행동을 방지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군 간부들의 최대 목표가 무사히 정년을 채워 연금 수령 자격을 얻는 것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인이 군인이라기보다 복지부동하는 월급쟁이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쿠데타는 정치가 국민을 통합하는 데 실패했을 때 발생한다. 후진국에서 쿠데타가 일상화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쿠데타가 사라진 것은 20여 년 전 K소장이 거론한 5가지 이유도 있지만 동시에 정치가 안정되고 민생이 꾸준히 향상된 효과라고 봐야 한다. 반면 정치가 이런 본연의 기능을 상실할 경우에는 쿠데타보다 더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 아니 대한민국 자체의 상황은 심각하다. 심각한 경제 상황도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이 정권의 정체성이다. 이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삼권분립을 핵심으로 하는 법치 등 이 나라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국민이 불안해한다. 이 문제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불거졌다.
정부가 최근 군(軍)의 중장 정원 31명 중 20명을 교체했다. 최근 10년 동안에 걸쳐 최대 규모의 인사였고 그 성격은 ‘계엄 문책’ 인사였다. 이번 인사에선 대상자에게 ‘계엄은 내란이었느냐’며 묻는 절차가 있었다고 한다. 내란이라고 답하지 않으면 승진에서 배제하는 테스트였다. "이런 식이면 진급 안하겠다"고 말한 장성도 나왔다고 한다.
이재명 정권이 순한 양이 된 군인들을 다시 이리로 바꾸려고 작심했다면 국가 안보를 위해 감사할 일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