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한미협상을 '을사늑약'에 빗대 파문

李정부 안보·통상외교 포기했나 다 퍼줘 놓고는 "을사늑약" 이라니 후속 협상은 이제 어쩌려고 이러나

2025-11-16     조남현 기자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

대통령실 3실장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후일담이 파문을 낳고 있다.

강훈식 비서실장과 김용범 정책실장, 위성락 안보실장은 14일 밤 공개된 이재명 대통령 유튜브에서 한미 협상이 타결됐던 지난달 29일 경주 한미 정상회담 전후 상황을 소개했다.‘케미폭발 대통령실 3실장’이란 제목의 영상은 한미 관세·안보 협상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발표된 뒤에 공개됐다. 관세 협상의 주무를 담당했던 김 실장은 지난 8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 측이 보내온 협상안에 대해 "기절초풍이라고 해야 할지, 진짜 말도 안 되는 안이었다"며 "아, 올해가 을사년(乙巳年)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일본과의 불평등 조약인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도 을사년이었다는 점이 상기될 정도로, 시작부터 불평등 정도가 심했던 협상이었다는 취지로 해석되었다.

이보다 앞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미 관세협상에서 일부 조항의 경우 매우 불공정한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여기(한미 관세협상) 내용 중에 공정한 내용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하고 싶어서 이렇게 한 것은 아니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외교 전문가들은 "앞으로 후속 협상이 계속 이어질 텐데 협상 상대방 미국을 자극하는 발언들이 정부 고위 공직자들의 입에서 여과 없이 나오는 건 국익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한미 무역 협상을 담당했던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밴플리트 정책 포럼’에서 "공동 팩트시트는 최종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길고 불확실한 과정의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전 본부장은 "양국 정부가 양국 모두에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구체적인 투자 프로젝트를 어떻게 선정, 관리하느냐에 많은 게 달려 있다. 이 합의가 견고하고 지속 가능하려면 미국의 제조업 발전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전략 분야에서 양국 모두의 성장과 혁신을 지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진짜 시험은 앞으로 있을 것이고, 이건 정말 가본 적이 없는 길"이라며 후속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야권에서는 "미국의 요구는 뭐든 다 들어주면서도 우리 요구는 관철하지 못해 놓고선 이제 와서 불공정하다며 을사늑약에 빗대는 건 안보·통상외교를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앞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4일 공개된 한·미 관세협상 ‘조인트 팩트시트’를 두고 "알맹이 없는 백지 시트"라고 맹비난했다.

장 대표는 이날 오후 경기 성남시 성남도시개발공사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비리 항소 포기 규탄 현장간담회’에서 "미국이 원하는 대로 모두 들어준 트럼프에 의한, 트럼프를 위한, 트럼프의 무역협정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16일 논평에서 "한미 팩트시트는 우리가 치른 비용만큼 국익이 돌아오는지에 대한 핵심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며 "3500억 달러 투자와 15% 관세 유지 등 확정된 부담은 문서에 명확히 적시됐지만, 핵잠수함·핵연료 권한 확대는 ‘지지’, ‘절차 개시’라는 선언적 문구만 남았다. 확정된 현금을 내고 조건부 어음을 받은 셈"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호의적이지 않다.

한 전문가는 16일 "백악관이 공개한 공동 팩트시트 원문을 토대로 한미 협상을 분석해 보니 조항 하나만 보면 협력처럼 보이지만, 각 조항을 전체로 연결해 읽어 보면 미국이 설계한 규범 체계에 한국이 편입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요구는 반영되지 못한 채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만 관철되는 설계에 따른 협상이었음이 팩트시트로 확인된다는 이야기다.

이는 대미 투자 이행이나 핵잠수함·핵연료 등에 대한 후속 협상에서 정교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걸 말한다.

이런 가운데 정부 고위 공직자들이 미국이라는 협상 파트너를 악마화하며 마치 무용담 늘어놓듯 정부의 공적을 자랑하는 것은 자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