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뇌혈관 뚫는 혈전 킬러봇 개발...뇌졸중 치료의 판 바꿀까

2025-11-16     양철승 기자
모래알 크기의 이 캡슐형 마이크로봇은 전자기 제어를 통해 뇌혈관 속 혈전으로 이동해 용해제를 방출한다. 약물 방출과정에서 캡슐 또한 생분해돼 사라진다. /ETH 취리히

혈전은 체내의 시한폭탄이다. 특히 혈전이 뇌혈관을 막으면서 발생하는 뇌졸중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연간 1200만명의 환자 중 많은 수가 사망에 이르거나 반신 마비와 같은 심각한 영구장애를 겪는다.

이런 혈전을 빠르고 안전하게 제거할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됐다. 약물을 품은 채 뇌혈관을 따라 이동해 혈전을 녹인 뒤 사라지는 모래알 크기의 마이크로봇이 그것이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ETH 취리히) 브래들리 넬슨 교수팀이 주도하는 국제 공동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자기장 기반 마이크로봇을 이용해 돼지, 양 등 대형 동물에서 정밀한 혈관 내 이동과 표적 약물 전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기존 혈전 치료술의 한계를 해결하고자 이번 연구에 뛰어들었다. 넬슨 교수는 "혈전은 대개 약물(혈전 용해제)을 투여해 녹이는 방식으로 치료하는데, 혈전에만 정확히 투여할 수 없어 전신 약물을 사용한다"며 "약물이 전신에 퍼지기 때문에 필요한 양이 혈전에 도달하도록 고용량 투여가 불가피하고, 이는 체내 출혈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이 찾아낸 해법은 로봇이었다. 미세 뇌혈관 속에서도 이동 가능한 마이크로봇을 통해 혈전에만 정확히 약물을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마이크로봇이 갖춰야 할 조건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모래알만큼 작은 덩치에 생체적합성과 생분해성, 조영(造影)성, 이동성을 가져야 했고, 약물까지 적재해야 했다. 마이크로봇 개념이 등장한 이래 이 요소들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수십 년간 난제로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수년의 실패와 개선 끝에 2㎜ 미만의 원형 젤 캡슐 안에 자기장으로 움직임을 제어할 철 산화물 나노입자, X레이로 위치를 추적할 탄탈룸(Ta) 나노입자, 표적 치료제를 동시에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넬슨 교수는 "자기 기능, 영상 가시성, 정밀 제어의 결합을 위해 재료 과학과 로봇 공학 간의 완벽한 시너지가 필요했다"며 "그중에서도 작은 캡슐이 충분한 자기 특성을 갖게 하는 것이 큰 기술적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연구팀은 이 캡슐을 제어할 전자기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캡슐을 혈액 속에서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3가지 방식을 결합했다. 회전 자기장으로 혈관 벽을 따라 캡슐을 굴리는 방식, 자기장으로 캡슐을 당겨 혈류를 거슬러 이동시키는 방식, 혈류를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방식이다. 첫 번째 방식은 초당 4㎜, 두 번째 방식은 초당 20㎝의 속도를 낼 수 있다.

논문의 제1저자인 ETH 취리히의 파비안 랜더스 박사후연구원은 "혈전 용해제가 고주파 자기장에 의해 방출되는 과정에서 캡슐은 분해돼 사라진다"며 "사용하는 자기장의 세기와 주파수도 몸에 해로운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의 차별점은 단순한 마이크로봇을 넘어 당장이라도 임상이 가능한 수준의 전자기 내비게이션 시스템과 약물 방출 카테터, 생분해 약물 캡슐이 결합된 완성도 높은 시스템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효용성은 동물실험에서 입증됐다. 돼지 실험에서 캡슐 마이크로봇은 완벽한 제어 속에 목표 지점으로 이동해 약물을 방출했다. 약물 전달 성공률이 95%를 넘었다.

또한 양의 뇌척수액에서도 동일한 제어능력이 확인됐다. 이는 혈전에 더해 뇌종양, 감염, 척수 질환 등 다양한 뇌·신경 치료까지 적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미 항생제, 종양 치료제 등의 약물 적재에도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 시스템이 아직 전임상 단계지만, 추가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5~10년 내 의료 현장에서 첫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넬슨 교수는 "개발된 약물 중 약 3분의 1이 전신 독성 문제로 시장에 나오지 못한다"며 "전신 독성에서 자유로운 이번 표적 전달 기술은 신약 후보물질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캡슐 마이크로봇은 혈관 속에서 3가지 방식으로 이동한다. 회전 자기장으로 혈관 벽을 따라 캡슐을 굴리는 방식, 자기장으로 캡슐을 당겨 혈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 혈류를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방식이 그것이다. /ETH 취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