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광훈의 시사 사자성어] 장동혁이 인용한 시위소찬(尸位素餐)
대장동 사건 1심 판결에 대해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미증유의 사태를 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당대표가 ‘시위소찬’이라고 비판했다. ‘자리만 차지하고 제 할 일은 하지 않다’는 뜻이다.
시(尸)의 본뜻은 주검이지만, 나중에는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을 대신해 제상에 앉히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했다. 이 사람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제사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글자는 헛되이 자리만 차지한다는 의미로도 쓰이게 됐다. 이런 달라진 뜻으로 인해 주검을 가리킬 때는 죽을 사(死)를 더해 시(屍)자를 주로 사용한다.
소(素)는 가공하지 않은 흰 비단이라는 본뜻에서 ‘흰색’이나 ‘원래’ 등의 의미가 더해졌다. 이에서 더 나아가 ‘헛되이’라는 부사로도 쓰인다. 찬(餐)은 명사로는 ‘밥’, 동사로는 ‘먹다’이다.
시위(尸位)라는 말은 ‘서경’(書經)의 오자지가(五子之歌) 편에 처음 보인다. 소찬(素餐)은 ‘시경’(詩經) 벌단(伐檀) 편의 "저 나리들은 헛되이 밥만 먹지 않아"(彼君子兮, 不素餐兮)라는 말에서 나왔다. 권세를 믿고 백성을 괴롭히는 관리들을 향한 풍자다.
이 두 단어는 ‘한서’(漢書)의 주운(朱雲)열전에서 처음으로 함께 쓰였다. 주운이 황제 앞에서 승상 장우(張禹)를 이렇게 비판한 뒤 칼을 내려주면 이 간신을 참하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저질러진 검찰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와 그 주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시위소찬’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지 제 할 일을 하지 않은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세를 등에 업고 부당한 권력을 휘두름으로써 막중한 국가기관의 정당한 업무추진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위세를 끼고 권력을 휘두르다’는 뜻의 ‘협세농권’(挾勢弄權)이 더 어울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