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김민석의 종묘 사랑

2025-11-13     홍승기 변호사 법무법인 신우
홍승기

그날 새벽 오를리공항은 아침노을로 불탔다. 파리 시내로 미끄러지면서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준다’던 프랑스 혁명기 구호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듯도 했다. 고만고만한 파리 시내의 전형적 건물에서 ‘세운상가’의 정체도 각성 되었다. 아하, 파리식 ‘주상복합건물’이 세운상가에서 흉물이 되었구나!

금년이 청계천 복원 20주년이다. 살아난 청계천과 버스중앙차선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장 시절 밀어붙인 작품이다. 갖은 불평과 비난이 폭주하였으나 이제 그 성과를 모든 시민이 누린다. 지도자의 안목과 역량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권한을 조금 갖게 됐다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 그 입장을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발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사이의 분쟁에서 대법원이 서울시 손을 들어주었다.

사연인즉, 종묘 인근의 세운상가 재개발을 위해 서울시가 문화재보호 조례를 개정했다. 종전 조례로는 국가지정문화재의 외곽 경계로부터 100미터 이내를 보존지역으로 지정하되, 보존지역 밖에서도 건설공사가 문화재에 영향을 미치면 인·허가를 취소할 수 있었다(제19조). 대법원은 그 제19조가 문화유산법에 없는 과도한 규제이니 조례 개정이 맞다고 했다.

문체부장관의 대응에 이어 바로 김민석 국무총리가 나섰다. 유홍준 국립박물관장을 가이드로 종묘를 거닐며, 고층건물이 들어서면 (종묘의) ‘숨이 눌리고, 기가 막힌다’고 했다. TV 카메라앞에서 "김건희 씨가 종묘에 마구 드나들어서 국민이 모욕감을 느꼈다"고 덧붙인 발언은 엉뚱하고 얄팍했다.

반면, 감동의 사진작품 ‘종묘 시리즈’의 주인공 배병우 작가는 서울시의 계획이 새로운 도시 경관을 줄 것이라 호평했다.

과거의 역사는 현실의 안목(horizon)을 넓히는 데 기여하는 범위에서 의미가 있다. 압도적 위용을 자랑하는 도쿄역 전방의 첨단 업무지구는 문화재인 도쿄역 주변 고도제한을 풀어서 가능했다. 인근 황거(皇居)의 녹지와 어우러진 마천루의 파노라마는 얄밉도록 멋진 풍경을 만든다.

바쁜 일정 중에 문체부장관과 총리께서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종묘를 둘러보셨을 테니, 이제 음습한 세운상가 주변도 돌아보시고, 아예 도쿄도 다녀오시기 바란다. 파리 에펠탑 건축 당시에도 반대파들이 난리법석을 떨었다지만, 가까이 청계천 복원과 버스중앙차선의 효용에 이미 답은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