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숨은 이야기]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

완전한 아름다움은 神性...여인의 육체에 여신의 이름을 붙이다

2025-11-13     박문경 문화평론가

밀로의 비너스상은 최근 왕관을 비롯해 값비싼 보석 유물을 도난당해 더욱 유명해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비너스상은 기원전 2세기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밀로의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리스 밀로 섬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며, 비너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고대 그리스 아프로디테 여신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스 정부는 줄기차게 비너스를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프랑스 정부는 세계 문화유산 보존의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밀로의 비너스. /프랑스박물관연합

그리스 밀로 섬에서 농부가 발견

1820년 4월 어느 날, 그리스 에게해 밀로 섬에서 한 농부가 밭을 갈기 위해 땅을 파던 중 대리석 조각상 하나를 발견했다. 당시 이 섬에 정박 중이던 프랑스 해군 장교는 이 조각상의 가치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그는 그리스 주재 프랑스 대사에게 조각상을 당장 사들여야 한다고 설득했다.

당시 그리스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유물 발굴을 알게 된 제국의 관리들이 비너스상을 농부로부터 압수해 콘스탄티노플로 보내려 했다. 프랑스 대사는 튀르크 관리들에게 뇌물을 먹이는 한편 외교적 압력도 행사해 비너스상의 소유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프랑스는 메디치의 비너스를 대신할 새로운 비너스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메디치의 비너스란 나폴레옹이 유럽을 호령할 때 이탈리아 메디치에서 비너스를 약탈해 루브르에 전시한 것이다. 이 비너스는 밀로의 비너스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의 패망과 동시에 프랑스는 메디치의 비너스를 이탈리아에 반환했고, 루브르는 이를 대체할 새로운 비너스상이 필요했다. 바로 그때 그리스 밀로 섬에서 한 농부가 비너스상을 발견한 것이다.

밀로의 비너스. /프랑스박물관연합

비너스 팔 ‘자른 ’건 세월 아닌 열강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로 반입된 밀로의 비너스는 그 이듬해에 국왕 루이 18세에게 헌납됐다. 비너스는 왕명에 따라 루브르로 옮겨졌다.

루브르로 옮긴 후 여러 차례 잘려나간 팔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비너스의 자세와 균형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었을까, 복원된 비너스는 더 이상 여신이 아니었고 대중의 혹평 또한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 예술원은 고심 끝에 팔이 없는 채로 전시하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루브르 박물관장은 불완전한 아름다움이 오히려 더 완벽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밀로의 비너스 두 팔이 사라진 까닭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비너스상이 밀로 섬에서 프랑스 함선에 실렸다가 다시 오스만 제국의 함선으로 옮겨졌고, 그걸 다시 빼앗는 과정에 조각상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때 작가와 제작 시기가 새겨져 있던 받침대도 바다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너스 두 팔을 자른 건 유구한 세월이 아니라 문화재를 서로 차지하려는 열강들이 바로 범인이다.

밀로의 비너스. /프랑스박물관연합

고전주의·헬레니즘 결합 고대 조각의 정수

밀로의 비너스는 균형과 조화, 이상적 인체미(人體美)를 특징으로 하는 고전주의와 헬레니즘의 관능미가 결합된 고대 조각의 정수를 보여준다. 팔이 사라진 독특한 모습 탓에 역설적으로 불완전함이 완벽함을 만들었다는 미의 상징으로 감동을 자아낸다.

루브르는 작가 미상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유력하게 추정되는 작가가 있다. 발굴 당시 안티오크 사람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of Antioch)라는 이름이 대리석 조각 받침대에 새겨져 있다. 알렉산드로스는 헬레니즘 초기에 활동한 조각가였던 만큼 비너스상은 헬레니즘 시대 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두 팔을 복원, 사과나 활을 들게 했지만 오히려 혹평을 받았다. /프랑스박물관연합

인간 여인 모습에 붙여진 신의 칭호

비너스의 얼굴 표정은 무심하고 고요하며 인간을 초월한 신의 위엄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여인의 모습에 어찌하여 전지전능한 신(神)의 칭호를 붙였을까? 그건 고대 그리스인의 종교관과 사상이 결합됐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은 곧 선(善)한 것이며 진리와 상통하는 거라는 관념을 가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인간의 육체이며, 조각가가 인간의 몸을 완벽하게 빚어냈을 때 그것은 단순한 모델의 재현이 아니라 신의 경지에 든 상태로 보았다. 즉 완전한 미(美)는 인간 세상의 불완전성을 초월해 신성(神性)을 띠며, 이상적이고 완벽한 아름다움은 신의 속성이었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들 중 최고 아름다운 여인의 육체에 여신의 이름이 붙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의 종교관에 따르면 신들 또한 인간과 똑같은 형상과 감정을 가진 존재였다. 그런 이유로 제우스, 아프로디테 등 그리스 신들은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됐다. 고대 그리스 조각가들은 특정 모델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게 아니라 여러 모델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결합하고 여기에 가장 조화롭게 여겨지는 수학적 황금비(1:1.618)를 적용해 이상적인 모습을 창조했다.

결국 고대 그리스에서 여인의 육체에 비너스라는 신의 칭호가 붙은 것은, 미적인 것이야말로 신적인 것이라는 종교적·철학적 믿음이 반영된 결과이다. 비너스상처럼 완벽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한 여신의 현현(顯現)으로 인간들로부터 숭배 받아 마땅하다.

밀로의 비너스에게 여신 자리를 물려준 메디치의 비너스.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미완성의 완전함, 서구 미학 기준 재정립

비너스상의 자세는 미학적으로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기법이 적용된 형태이다. 이 기법은 오른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싣고 왼쪽 다리를 편하게 두어 몸이 자연스럽게 곡선을 그려서 어느 각도에서 보나 아름다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비너스상에 적용된 콘트라포스토 기법은 차가운 대리석 조각이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을 얻는 한편 관람객의 시각을 극대화 시킨다. 또 미끄러져 내리는 옷을 한 손으로 잡고 있는 듯한 자세는 곧 옷이 떨어질 것만 같은 긴장감과 강렬한 관능미를 불러일으킨다.

비너스상의 감상 포인트는 역설적으로 팔이 없음으로 하여 완벽함을 띤다는 데 있다. 팔이 없기 때문에 비너스가 거울을 보고 있었는지, 사과를 들고 있었는지, 창을 들고 있었는지 등 수많은 포즈를 자유롭게 상상하게 된다. 이처럼 미완성의 완전함은 감상하는 이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또 팔이 없음으로 하여 조각상이 지닌 입체·질감·육체의 비례라는 본질적인 요소가 돋보이고 조각상의 절대적 아름다움을 찬미하게 만든다. 비너스의 두 팔 부재는 작품을 특정 포즈에서 해방시켰고, 시대를 초월한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이라는 미의 상징이 되었다.

이처럼 미학적 특징이 결합된 밀로의 비너스는 균형 잡힌 이상미, 역동적 관능성,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백의 미학 등을 모두 가진 불멸의 걸작이다. 밀로의 비너스는 단순히 고대 유물을 넘어 서구 미학의 기준을 재정립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리스 정부의 비너스상 반환요구

그리스 정부는 조각상이 발굴될 당시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하에 있었으므로 비너스상은 점령국 간 불법적 거래였다고 주장한다. 당시 프랑스 해군이 비너스를 차지하기 위해 밀로 섬 주민들에게 강압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튀르크와 전투를 하다가 비너스 팔이 떨어지고 잃어버리기까지 했으니 그 책임 또한 막중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그리스 정부와 밀로 섬 주민들은 비너스를 전시 약탈 문화재로 규정하고 계속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