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들 떨고 있니?...과학수사의 성배 ‘탄피 지문’ 복원 성공

2025-11-12     양철승 기자
아일랜드 메이누스대학 연구팀이 발사된 총알의 탄피에서 지문을 복원하는 기법 개발에 성공했다. 탄피의 지문은 범인 검거의 직접적 증거가 되지만 총을 발사할 때 생성되는 고온과 가스 분출, 총열과의 마찰로 사라져버려 한 세기 이상 법의학자들의 성배로 남아 있었다. /DALL·E 생성 이미지

현대적 지문 포렌식 기술이 개발된 이래 총격 사고에서 발견된 탄피는 법의학자들의 난제였다. 범인이 총알을 다루는 과정에서 지문을 남겼을 가능성이 크지만 총이 발사될 때 발생하는 높은 온도와 가스 분출, 총열과의 마찰로 사라져버려 복원이 불가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한 연구팀이 이처럼 과학수사의 성배로 불리던 탄피 지문의 시각화에 성공했다.

메이누스대학 에스니 뎀프시 박사팀은 법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포렌식 케미스트리(Forensic Chemistry)’에 발표한 논문에서 최대 700℃ 이상의 고온에 노출된 황동 탄피에서 지문 복원이 가능한 새로운 전기화학적 증착 기법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일명 ‘유령 지문’으로 불리며 한 세기 이상 법의학자, 그중에서도 총기 범죄가 심각한 미국 등 국가의 법의학자들을 괴롭혔던 불가능의 벽을 무너뜨린 획기적 성과로 평가된다.

연구팀이 찾아낸 마법의 레시피는 3,4-에틸렌디오옥시티오펜(EDOT)과 페노티아진(Phenothiazine)을 조합한 전도성 고분자 물질이다. 탄피 표면을 전극으로 삼아 0.1V의 낮은 전압을 걸면 고분자 물질이 표면의 미세한 틈을 메우면서 숨겨진 지문 능선을 따라 증착되는 원리다.

뎀프시 박사는 "탄피 표면에 남은 연소물을 마치 스텐실처럼 활용해 고분자 물질로 그 틈새를 채우는 것"이라며 "모든 지문 시각화 과정은 불과 120초 내에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때 시각화된 지문 패턴은 지문 인식 등급 중 최고인 ‘레벨3’에 해당한다. 능선은 물론 피부의 땀구멍까지 확인되는 수준이다.

특히 이 기법은 탄피를 700℃ 이상 가열하거나 실온에서 최대 16개월이나 보관한 후에도 동일한 지문 복원 결과를 얻었다. 총기 발사 시의 탄피 표면 온도가 약 400~600℃로 추정되는 만큼 실전 조건에서도 충분히 유효한 방법임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탄피 분석은 ‘어떤 총에서 발사됐는가’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연구팀의 기술이 도입되면 ‘총알을 누가 장전했는가’를 밝히는 것으로 국면이 전환된다. 범인 검거에 훨씬 가까워지는 것이다. 연구팀의 콜름 맥키버 박사과정생은 "지문을 복원한다면 총기는 물론 사람까지 연결할 수 있다"며 "과학수사의 숙원에 한발 크게 다가섰다"고 밝혔다.

이 기법의 또 다른 강점은 유해성이 없고, 저전력의 친환경 공정이라는 점이다. 강한 산화제나 독성 시약을 쓰지 않으며, 전압을 조절하는 소형 기기(potentiostat)만으로 지문 복원이 가능하다. 비용이 저렴하고, 시료 훼손이 적으며, 추가 전처리가 거의 필요 없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휴대성도 뛰어나다. 연구팀에 따르면 복원 장치를 스마트폰 크기로 제작할 수 있으며, 추가 개선을 거쳐 현장 수사관이 직접 지문을 복원하는 휴대형 키트로 발전시킬 수 있다. 아울러 탄피에 더해 칼, 동전, 총기 프레임 등 금속 물체 전반으로의 응용 가능성도 높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개념 증명(PoC) 단계임을 명확히 했다. 현재까지 모든 실험은 실제 총기를 발사하는 대신 탄피를 가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총기 발사 시 발생하는 고온 가스나 화약 잔류물의 복합적 영향에 대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아일랜드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현장 검증과 표준화 실험을 추진할 예정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후속 연구를 통해 향후 알루미늄, 강철 등 다양한 합금과 습도·기름기 등 다양한 환경 조건에서 재현성을 확보한다면 탄피가 범인의 지문을 직접 증거로 제공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기술이 상용화되고 법정 증거로 인정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번 연구는 ‘총을 쏘면 탄피 지문이 사라진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고 과학수사와 범인 검거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이 전기화학적 기법으로 전도성 고분자 물질을 탄피에 증착시켜 복원한 지문. 이 기법은 지문의 능선은 물론 땀구멍까지 확인되는 지문 인식 최고 등급(레벨3)의 선명도를 자랑한다. /메이누스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