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징비록] 핵추진잠수함 확보, 이유불문 서둘러야 한다

2025-11-10     권태오 예비역 육군중장·군사학 박사
권태오

이번 경주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핵추진잠수함 확보라는 커다란 숙원을 해결했다. 그런데 그 직후 들리는 것이 모두 걱정스러운 이야기뿐이다.

가장 좋아해야 할 해군에서는 건조에 10년 정도 걸린다고 하고, 어떤 정치인은 운용 경비가 많이 들어 국민 경제를 위협할 것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지역 내 군비경쟁을 초래해 현재보다도 위협이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근해 작전이 중요한 한국으로서 구태여 원해 작전용인 핵추진잠수함은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씨도 뿌리기 전 추수부터 걱정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있다. 태평양 넓은 바다 어느 한 지점에서 미사일이 발사됐다. 즉각 미 전략사령부 레이다망에 미사일 궤적이 포착됐으나 도대체 어느 국가의 잠수함이 발사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예상 궤적은 미국 시카고를 향하고 있다. 잠수함에서 발사한 것이니 십중팔구 핵탄두가 장착된 미사일일 것이다. 표적에 도달할 시간은 17분. 요격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세계 최강 미국이 누구 짓인지 알 수 없는 핵 공격을 받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미국을 향해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 국가는 러시아·중국·북한 3개국인데 러시아와 중국은 자신들 짓이 아니라고 한다. 북한에 확인을 하고자 했지만 이 나라와는 연결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이것은 미국 본토가 기습적인 핵 공격을 받는 혼돈상황을 극화한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A House of Dynamite)의 줄거리다. 영화는 핵추진 잠수함이 얼마나 위협적인가 그 진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핵추진잠수함이란 소형 핵원자로의 동력을 이용해 움직이는 잠수함을 말한다. 종전 디젤엔진 잠수함과 비교해 보면, 수중에서의 활동시간이 대폭 늘어나고 선체 크기에 비해 움직임이 빠를 뿐 아니라 대형이지만 소음이 적어 은밀성도 증가된다. 수중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발사지점을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를 큰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대응이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상대를 마비시킬 수 있는 전략무기다.

북한은 2021년 1월 8일 제8차 당 대회를 열어 ‘최우선 5대 전략무기 과업’를 발표했다. 핵무기 소형화·ICBM(대륙간 탄도탄) 명중률 제고·극초음속 미사일 개발·군사정찰 위성 개발·핵추진 잠수함 개발 등이 그것이다. 4년이 지난 지금 과업의 대부분이 이미 달성됐거나 완성 단계에 있지만 핵추진잠수함은 진도가 나가고 있지 않았다. 북한 능력으로 소형 원자로를 제작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올해 상반기 러시아가 2~3개의 핵잠수함 모듈을 북한에 제공했다는 첩보가 군 당국에 포착됐다. 러시아가 사용 후 은퇴시킨 핵잠수함으로부터 떼어 낸 원자로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일 경우 북한의 핵추진잠수함 확보는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

인민이 배를 곯고 있다는 북한도 운용하겠다고 열을 올리는 핵추진잠수함이다. 40배 이상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한국에게 운용비 자체가 부담될 것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북한은 동·서해로 나뉘어져 애초부터 영해 바깥은 작전지역으로 설정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대형 잠수함에 몰두하는 것은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미국까지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다. 필요시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같은 상황을 획책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이다.

한국은 대륙으로의 연결 길이 막혀 지리적으로는 섬과 같으며 남쪽으로는 마라도 서남방 149㎞ 떨어진 이어도까지 영향권이 확장된다. 그리고 지금은 주변국들의 해군력도 급성장한 상황이다. 결코 해군 작전이 근해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는 형편이다. 결정적으로 북한의 핵추진잠수함 전력화가 코앞에 다가와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하는 마당에 힘 빼는 말만 하고 있는 모습은 상당한 유감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