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소방공무원 헌신에 감사" 표했지만...처우개선은 언제쯤?
제63주년 소방의 날을 맞은 9일 정부와 여야는 한목소리로 소방공무원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며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죽어서야 영웅이 되는 현실을 바꿔달라"는 절규가 이어지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인력난, 낡은 장비 등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위험을 피해 달아나는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며 오히려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생명을 구하는 이들, 바로 소방공무원"이라며 "보다 나은 근무환경을 조성하고, 합리적 지원과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며, 생명과 건강을 지킬 제도적 토대를 견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도 "지금 이 순간에도 재난 대응 최일선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에게 깊은 존경과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며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화마와 붕괴 현장으로 뛰어드는 이들의 헌신만큼,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소방공무원을 지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 대변인은 "PTSD·우울증·트라우마 등 심리 치유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정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조용술 국민의힘 대변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소방공무원과 의용소방대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면서 "위험하고 강도 높은 업무에 비해 인력은 부족하고, 피로 누적과 건강 문제가 여전히 큰 걱정거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상 소방공무원은 아직도 말로만 국가직"이라며 "승진 적체를 해소하고 인건비와 복지 문제를 국가가 안정적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감사 인사’보다 실질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는 지난 5일 국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방관들은 더 이상 죽어서 영웅이 아닌, 살아서 행복한 영웅이 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PTSD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례는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했던 소방관 두 명이 연이어 극단적 선택을 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만 8월까지 7명의 소방공무원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최근 10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공무원은 134명에 이른다.
소방청이 지난해 실시한 ‘마음건강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6만1087명 중 7.2%가 PTSD를, 27.9%가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절반 가까이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지만, 최근 5년간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은 비율은 74.6%에 불과했다. 정신질환의 업무 연관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근무 환경의 열악함도 여전하다. 내년 소방청 예산은 3295억 원으로 편성됐지만, 트라우마 치료 예산은 51억 원에 그쳤다. 화재 출동 시 지급되는 수당은 2014년 이후 11년째 1회 3000원에 묶여 있으며, 구급대원의 경우 하루 3회를 초과하면 지급되지 않는다. 노후 장비와 인력난도 심각하다. 올해 6월 기준 소방공무원 정원은 6만6881명으로 증가세가 둔화됐고, 3교대 근무로 인한 만성 피로와 수면 부족이 일상화됐다.
이해준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은 "국가는 언제나 ‘국민의 생명을 지켜라’고만 하지만, 정작 생명을 지키는 이들의 기본적 권리는 보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의 지적과 같이 소방의 날마다 정치권의 ‘감사 인사’가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소방공무원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대책이 강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