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칼럼] 택배기사 95% "새벽배송 하겠다"에 담긴 의미
최근 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새벽 배송 금지’를 제안하면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0월 22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출범한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새벽 배송 금지를 요청했다. 이유는 택배기사의 수면시간과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보호 대상이 되는 택배 근로자들 대부분은 새벽 배송 금지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택배기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5%가 ‘심야 배송을 지속하겠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응답자의 70%는 ‘야간 배송을 규제하면 다른 야간 일자리를 찾겠다’고도 했다.
새벽 배송 금지 또는 제한에 반대하는 근로자들의 이런 이야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느 신문 기사 제목처럼 ‘우리가 일하겠다는데 대체 왜?’이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국가가 개인의 선택을 어디까지 대신하고 제한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이며 정치철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근로자의 건강권과 수면시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새벽 배송을 금지 또는 제한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조치는 선의의 얼굴을 한 자유의 심대한 침해일 수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장미꽃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유명한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에서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는 동전의 양면이며, 하나가 억압되면 다른 하나도 유지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경제적 자유가 없는 정치적 자유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경제적 자유에 대한 통제는 곧 정치적 자유에 대한 통제와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다.
프리드먼에게 자유란 곧 ‘선택의 자유’(Free to Choose), 자율적 교환의 가능성이다. 새벽 배송 기업과 택배 근로자가 스스로 그 근무를 제안하고 선택했다면, 그것은 그들의 자유로운 계약의 결과다. 누구의 강제도 없는 자유로운 선택임에도 그것을 국가가 일률적으로 제한할 이유가 있는가? ‘공익’이라느니 ‘사회적 문제’란 말을 하지만, 공익이란 사실상 뜬구름 같은 이야기이며, 사회적 문제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개인과 가족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했다.
또한 프리드먼은 정부가 ‘국민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을 제한하는 것을 ‘온정주의적 간섭’이라 칭하며, 이런 간섭은 결국 "착한 의도로 시작되는 자유의 해체 과정"이라고 경고했다. 어떤 것이, 또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국가가 판단하고, 보호라는 미명 아래 선택의 자유를 부정하는 순간,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통제가 된다.
새벽 배송 금지 주장은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인 하이에크(F. Hayek)가 경고하는 ‘지식의 문제’ 및 ‘지식의 오만’ 문제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이에크는 "지식은 사회 각처에 분산되어 있으며, 그 어떤 중앙 권력도 모든 정보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각 개인은 자신만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어떤 근로자는 새벽 근무를 통해 수입을 높일 수 있고, 또 낮 동안 돌봄이나 학업을 병행할 수도 있고, 어떤 지역에서는 심야 배송이 농가와 소상공인의 생계를 지탱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현장과 현실의 다양한 사정들을 모르거나 무시한 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하이에크는 ‘지식의 오만’을 부린다면서 ‘겸손하라’고 경고했다. 새벽 배송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식의 오만을 한껏 부리고 있는 셈이다.
새벽 배송 금지 주장의 근저에는 ‘당신을 위해서’라는 온정주의 문제도 도사리고 있다. 국가가 선의의 이름으로 개인을 대신 보호하겠다고 나설 때, 그 보호는 곧 통제가 된다. 온정주의는 다른 말로 하자면 ‘국민을 어린아이처럼 취급한다’는 의미다. 택배 근로자는 자신의 이해관계도 모르는 존재라는 전제이며, 그러기에 국가 혹은 정치인이 나서서 보호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한다면, 그 출발은 인간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일 것이다. 그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며, 그런 자유가 없이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새벽 배송 금지 논란은 ‘국가가 개인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정치철학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에 대해 "우리가 일하겠다는데 대체 왜?"라는 대답은 단순한 항변이 아니라 자유 사회의 근본 원리를 환기하는 엄중한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