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평양 구애 ‘오뉴월 개꿈’ 시험대 되나

2025-11-05     자유일보

30년 전 일이다. 1994년 7월 8일 북한 김일성이 사망하자 남쪽에서 정쟁이 붙었다. 당시 민주당 이부영 의원은 "김일성 조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해, 이른바 ‘조문 파동’이 일어났다. 이부영 의원이 "김일성 주석 사망에 조의를 표하고 추도대회에 조문 사절단을 파견할 용의가 없느냐"고 정부에 질의한 것인데, 당시로선 파격적인 제의여서 민주당사는 항의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남북 왕래는 2000년 이후 늘었다. 남북간 교류 왕래 자체는 좋은 일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도 결국은 자유 왕래가 최종 목적이다.

문제는 친북단체들이 일방적으로 북한에 가기만 하고 정작 개방된 한국 사회를 눈으로 봐야 할 북한의 청년·대학생, 일반 주민들은 오지 못하게 되니, 쌍방 교류가 아니라 일방통행이 된 것이다. 이래서야 남북 교류 의미가 없다.

남북간 조문 왕래도 물론 있었다. 2001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별세하자 북한 아태평화위 송호경 부위원장 일행이 서울에 조문을 왔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엔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 회장 등이 평양에 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사망 때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 명의로 조의를 표명했다.

4일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사망하자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조의문을 발표했고 민주당에서 조문단 파견 제안이 나왔다. 박지원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자신이 조문 사절로 평양을 방문하겠다고 제의했다. 남북간 조문이 막힌 대화의 통로를 뚫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북한은 지난해 초부터 내부적으로 ‘민족’ ‘통일’ ‘남조선’ ‘남북 협력’ 등을 주민들 뇌리 속에서 지워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남북 ‘적대적 2국가론’은 당의 일반적인 정책보다 우위에 있는 하나의 ‘노선’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북한당국은 민주당과 박지원의 조문 의사에 아예 답변 않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 것 같다. 오히려 북한당국이 대남 비난성 발언이라도 나온다면 ‘관심 있다’는 시그널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조문 제의는 북한식 표현으로 ‘오뉴월 개꿈’에 그칠 공산이 클 것이다. 공연히 헛물만 켜게 생겼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