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AI시대 열겠다" 했는데...예산은 고작 10.1조 배정
이재명 대통령의 4일 국회 시정연설 핵심 키워드는 인공지능(AI)이었다. 약 22분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AI를 총 28번 언급하며 "내년은 AI 시대를 열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백년을 준비하는 역사적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2026년 예산안은 바로 AI시대를 여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예산"이라며 "(AI)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성장의 토대를 단단히 다지겠다"고 밝혔다. 내년 예산안에 담긴 AI 관련 예산은 총 10조 1000억 원이다. 이 대통령은 올해 관련 예산(3조 3000억 원)보다 3배 이상 늘어난 규모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AI 강조는 말의 성찬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예산 728조 원에서 AI 관련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1.39%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그나마도 수십 개 부문으로 찢어지면 정책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대통령이 AI 대전환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인공지능 시대에는 하루가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지게 된다"고 말한 점에 비추어 보면 빈약하기 짝이 없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현금 살포에 지나지 않는 13조 원가량의 소비 쿠폰 예산보다 적고, 지역사랑상품권 등의 발행을 지원하는 ‘민생사회연대경제’ 예산 26조 2000억 원에 비해서는 38.6%에 불과하다.
AI 예산만이 문제가 아니다. 데이터센터 등 AI 관련 산업이나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어마어마한 전력이 소요되는데 이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전력 공급 대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올해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약 2.7테라와트시(TWh)로 예상된다. 이후 매년 가파르게 증가해 2038년엔 15.5TWh에 달할 전망이다. 1TWh는 시간당 1조 와트를 뜻한다.
단일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최대 0.5기가와트(GW)에서 2030년 2.3GW, 2038년 4.4GW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AI 도입 확산과 초대형 클라우드센터 증가 등을 고려하면 실제 전력 수요는 정부 전망치를 웃돌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일각에선 2025년 전력 소비량을 4.5~5TWh, 2038년 30TWh로 상향된 추정치를 내놓는다. 이미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공급 능력을 초과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산업부에 접수된 내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 신청 총량은 6531메가와트(MW)로, 현재 수용 가능한 총량(4578MW)을 훌쩍 넘어섰다. 데이터센터 1곳당 평균 소비량도 63MW로 2023년의 36MW에서 크게 늘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가성비가 월등한 원자력보다 재생에너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11일 취임 100일 간담회에서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데 15년이 걸리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대대적으로 키워야 한다"며 "추가 원전 착공은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전 건설에 장기간의 시간이 들어간다고 해서 원전 건설을 포기하거나 등한시하는 건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 수요를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 일부 국가와는 달리 일조량이나 풍량이 적어 태양광이나 풍력에 의한 에너지 생산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 오는 날에 반도체 만들지 말라는 것이냐"는 냉소적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생산 노력도 기울여야 하지만, 동시에 원전 건설 투자는 꾸준히 하면서 기존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들어 신규 원전 건설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이고,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도 벽에 막히는 상황이다.
지난달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설계수명이 만료돼 2년 반째 가동이 중단된 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의 계속운전(수명연장) 결정을 또 미루었는데, 재생에너지를 우선하는 정권의 지향점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설계수명 만료가 도래하는 국내 대형 원전 10기의 계속운전이 중단되면 2030년 서울시 한 해 전력량을 웃도는 전력 공백이 발생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AI시대를 열겠다"는 이 대통령의 호언은 확장재정을 포장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