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삼양라면’에 담긴 사필귀정
대한민국 근대 식품산업의 출발에 ‘라면’을 빼놓을 수 없다. 6·25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로 늘어난 밀가루를 맛있고 든든한 한 끼로 만들어 낸 것이 라면이었다. 라면은 그야말로 혁신이자 가난했던 우리 국민이 즐길 수 있는 따뜻한 위로였을 것이다.
1960년대 당시 전중윤 회장이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와 설립한 삼양식품은 국내 1위의 독보적 라면 업체였다. 승승장구하던 삼양라면은 1989년, 한 문장으로 무너져 내렸다. ‘공업용 소기름을 식품에 사용했다!’ 익명의 제보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언론과 시민단체는 과학적 검증보다 감정적 공포를 자극했고, 여론은 재판보다 빠르게 기업에 대한 판결을 마쳤다.
불매운동과 경쟁사의 여론전까지 합세해 삼양은 시장에서 밀려났다. 이후 "문제 없다"는 정부 조사와 법원의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이미 잃어버린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2008년 광우병 선동, 2014년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 2016년 최서원 태블릿 PC 조작 사건처럼, ‘우지(牛脂·소기름) 파동’이라 이름 붙은 이 사건 역시 언론의 힘과 그 무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을 전하는 역할을 넘어 교묘하게 여론의 방향을 정하고, 감정을 증폭시키는 행태의 언론 보도가 개인과 기업의 명운을 결정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언론사나 기자 개인의 입장에서야 경쟁 때문에라도 특종, 신속보도 따위에 목숨을 걸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사실에 기반한 정확한 보도여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의혹 제기는 그야말로 책임질 수 있는 확실한 근거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상대적 약자인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오늘의 미디어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더 빠르고 거세다. 우리 국민도 80년대, 어쩌면 그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감정적 휩쓸림’에서 벗어나, 언론의 보도를 마냥 수용하기보다는 개개인 스스로가 진실을 탐구해야 한다. 또한 언론에 ‘진실’과 ‘책임지는 모습’을 요구해야 한다. ‘이 보도가 지금 왜 나왔을까?’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걸까?’처럼 비판적 수용의 태도로 언론을 대해야 언론도 진실에 집중하며 제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
삼양은 여러 논란과 침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한류와 K-푸드 열풍을 통해 불닭볶음면으로 해외 시장에서 히트를 쳐 다시 주목받았고, 이번엔 우지를 사용하는 과거 레시피를 복원해 만든 신제품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신제품 출시를 넘어, 거짓과 프레임으로 짓밟힌 진실이 36년 만에 되돌아온 순간 아닐까.
돌아온 삼양라면 한 봉지에 담긴 이야기는 단순히 한 식품회사의 흥망성쇠를 넘어 우리 사회와 국민 여론의 성숙도에 대한 척도가 될 수 있다. 창업주의 며느리인 김정수 부회장은 신제품 출시 발표회장에서 ‘사필귀정’이라는 사자성어를 꺼냈다. 진실은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드러난다. 라면 한 봉지에 담긴 사필귀정이라는 교훈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해지길 바란다. 진실과 정의의 승리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