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 잠수함 건조, 한미 협상 새로 해야

2025-11-03     자유일보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29일 미국에 핵연료 공급을 요청했다.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 걸음 앞질러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덧붙이는 말이 요상하다. 트럼프는 한국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하게 될 것이며 미국의 조선 산업이 크게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리 답변을 준비했는지, 부동산업자의 태생적 순발력인지 알 수 없지만 트럼프 특유의 ‘거래의 기술’이 아니었나 싶다. 수학 기호로 표시하면 ‘핵연료 공급 요청=미국 조선 산업 부활’이다. 하지만 누가 들어도 같은 맥락이 아니다. 우리는 희망을 말했는데 돌아오는 말은 이익이었다.

답은 필라델피아 조선소에 있다. 필라델피아 조선소, 약칭 필리조선소는 2024년 우리 기업 한화가 인수했다. 이 조선소는 ‘상선’을 전문 건조하는 곳으로 애초부터 핵잠수함 건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까 한국 자본으로 방사선 점검 장비와 차폐시설 등 필요한 인프라를 다 지으라는 얘기다. 당연히 미국에서는 엄청난 고용 창출에 시설 확장이니 트럼프 입장에서는 미국 조선 산업 부활이 맞다.

안보를 위해 또는 미국과의 대체 불가능한 동맹을 확정하기 위해 그 정도 출혈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돈으로 다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필리조선소는 방위산업체가 아니다.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려면 일단 방위산업체로 지정돼야 하고 이때부터 각종 인·허가와 규제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 시간은 길게 잡아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허들을 다 통과해서 조선소를 지었다고 치자. 그때부터 이 조선소는 연방정부와 의회 그리고 주정부의 직접적 통제를 받게 된다. 비용은 몇 배가 들어가고 통제도 우리 손에서 벗어난 핵추진 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핵추진 잠수함은 주권의 상징이 아니라 의존의 상징으로 추락한다.

핵심은 핵연료에 대한 통제권과 국내 조선소 건조다. 미국에서 고농축우라늄 연료를 공급받고 독자 설계로 우리 조선소에서 잠수함용 원자로와 선체를 개발하는 것이 정책의 기본 방향인 것이다. 이게 명확하지 않으면 우리도 드디어 핵추진 잠수함을 갖게 됐다는 선언은 아무 의미가 없다. 외교에서 호의는 선의가 아니라 이익에서 나온다. 한미 협상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