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칼럼] 새벽 배송은 개인의 계약과 자유, 책임의 문제
택배 노동자들의 새벽 배송 문제가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민노총 택배노조가 ‘심야 시간(자정~오전 5시) 배송 제한’을 민주당에 제안한 것이 계기였다.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서도 좌우 진영 많은 논객들이 새벽 배송 찬반 논리를 전개하며 대립하는 양상이다.
새벽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는 단순하다. 야간 노동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다. 쿠팡 심야 노동의 경우 2020년 이후 배송 기사 등 사망 사건이 20여 건에 이른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심야 노동을 방치할 수 없다는 이상론에 가깝다.
반면 새벽 배송 존치 주장은 현실론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일자리 문제가 있다. 쿠팡과 마켓컬리 등의 새벽 배송 서비스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확산 일로다. 현재 쿠팡 물류센터의 직접 고용 인력만 해도 5만8000여 명으로 2018년 대비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쿠팡의 야간 고정 배송기사도 1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새벽 배송을 제한할 경우 이용자들의 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물류가 낮에 몰려 교통 혼잡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론과 현실론이 대립하면 토론은 평행선을 그리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진영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현상은 덤이다. 이번 심야 노동 제한이라는 주제에서는 누군가가 타인의 노동을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규제하는 일이 가능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심야 노동 제한론자들은 규제 근거로 이미 시행 중인 아동 노동이나 장애인 노동의 제한을 예로 든다. 이는 예외적인 사례를 보편적인 기준으로 차용하는 왜곡이다. 아동이나 장애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노동 조건을 판단할 능력이 없기에 계약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인정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성인에 대해 이런 개입이 인정되어서는 안된다.
개입론자들은 성인도 자신의 노동 조건에 대해 착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다면 그것을 해소하는 데 제도적 노력을 기울여야지, 개인의 의사 결정권에 대한 개입을 제도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것은 파시즘의 출발점이 된다.
자신의 노동 계약에 다른 사람이 개입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개입이 집단의 외피를 빌리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 외피는 대개 노조나 사회나 국가 또는 제도의 이름을 빌린다. 그래도 그 본질은 결국 ‘타인의 개입’이다. 좌파들은 집단의 이름을 빌려 타인의 자유에 개입하고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이익을 챙긴다.
인간은 자신의 문제를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걸 대신할 타인은 없다. 노동 계약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계약에 개입하는 집단은 그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다. 모든 계약은 본질적으로 개인과 개인 사이에 성립한다. 모든 개인은 자신만의 고유한 요구와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노조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단체협약은 불합리하다.
진보는 다양화이고 자유의 확대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다양화와 자유의 확대는 개인의 선택과 책임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경제적 개선도 이 문제와 연결된다. 그러나 좌파들은 개인도, 자유도, 책임도, 경제적 개선도 부정하고 증오한다. 그들은 겉으로만 진보를 위장할 뿐 반(反)진보적이고 반동적인 세력이다.
좌파는 민주화의 명분 아래 우리 사회에 집단화의 길을 강요해왔다. 결과적으로 21세기가 요구하는 선진화와 합리화의 길이 막히고 청년들의 미래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나마 주어진 것이 새벽 배송 같은 막다른 선택이다. 그런데 좌파들은 그 선택마저 가로막으려 한다. 이것은 계약과 개인의 책임, 자유의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