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대미투자 후폭풍…제조업·지역경제 공동화 우려

2025-11-02     채수종 기자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앞으로 천문학적 대미 투자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한국 기업들이 앞으로 10년 이상 매년 최대 200억 달러의 대미투자를 하게 돼 국내 투자 위축과 제조업 공동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으로 국내 설비투자가 감소하면서 성장률이 낮아지고, 국내 주요 제조시설의 해외 이전이 가속할 경우 지역경제, 고용시장 등 경제 전반으로 연쇄 타격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따라서 이를 보완할 해외기업의 국내 투자 유인책과 함께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 고용 충격의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미국의 고관세 부담은 완화됐지만, 그 대가로 추진되는 대규모 대미투자가 국내 투자 여력을 빠르게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비롯한 산업 협력이 본격화하면 한국의 대미투자 규모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는 "연간 대미투자가 내년부터 2배가량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업의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국내에 투자할 여력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고관세 하에 대미투자는 현지 시장에 들어가기 위한 전면적 투자 형태"라며 "국내 투자와 보완성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대미투자가 크게 늘면 국내 투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작년 반도체·자동차·이차전지·조선 등 10대 제조업의 투자 실적은 114조원을 기록했다. 10대 제조업 투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4%, 전산업 설비투자의 42%를 차지한다. 올해는 10대 제조업 투자계획이 119조원으로 7% 증가한 수준으로 추정됐다. 최근 설비투자가 회복되면서 GDP 성장세를 뒷받침했지만 앞으론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3분기 GDP 속보치에서 설비투자는 반도체 제조용 장비, 법인용 자동차 등의 주도로 전기 대비 2.4% 증가했다. 성장률 기여도는 0.2%포인트(p)다.

대미투자 확대로 촉발된 국내 투자 위축은 국내 제조업 공동화를 부를 수 있다. 투자가 줄고, 제조업 기반 시설이 미국으로 옮겨가면서 제조업 거점이 되는 지역경제도 약해진다. 제조시설이 이전하면 일자리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대형 공장 인근 자영업자, 소상공인 경기까지 위축될 수 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과거 조선업이 쇠락하면서 거제·통영 지역경제가 침체했다"며 "제조업 경기가 중장기적으로 공급망에 해당하는 중소·중견 공급업체 위축으로 이어지고, 주변을 둘러싼 상가 공실과 미분양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미 고관세로 타격을 입은 지역경제가 장기적으로는 공동화로 인한 2차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폭 늘어나는 대미투자를 피할 수 없다면 해외 기업의 국내 투자 유치를 늘려야 한다. 김광석 실장은 "대규모 인공지능(AI) 기술 협력을 도모하고 규제를 적극 완화해서 한국을 테스트베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비스업 경쟁력을 키워 내수시장을 탄탄하게 키우고 장기적으로는 서비스 수출 확대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허정 교수는 "앞으로 제조업 공동화는 필연적인 현상"이라며 "서비스업 발전법을 통과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서비스 산업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고용안정에도 힘써야 한다. 장용준 경희대 무역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자유무역협정(FTA)로 실업 이슈가 발생하자 TAA(무역조정지원)제도로 대량 실업 되거나 임금이 삭감된 노동자에게 정부가 일자리를 찾아주는 식으로 지원했다"며 "이를 벤치마크해 해외직접투자 관련 실업자, 피해기업, 하청업체에 직업 전환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