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삶을’ 물이 끓기 시작한다

2025-10-26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 박사
서민

김현지 출석 논란, 국민의힘이 발의한 추미애 방지법, 최민희 딸의 결혼과 양자역학, 쭉 같은 편이던 최민희와 MBC의 다툼 등등, 원래 국감이 여야가 싸우는 곳이긴 해도 올해 국감에서의 여야 대립은 거의 못 봐줄 수준이었다.

그런데 10월 24일, 법사위에서는 국감 시작 후 처음으로 여야가 하나가 되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날의 주인공은 바로 공수처, 여야는 ‘처장 사퇴’ ‘쇄신’ ‘공수처 폐지’ 등등을 요구하며 한 목소리로 공수처장을 질타했다.

민주당 박지원은 "5년간 2명 구속하고 6명 입건했다면 공수처가 왜 존재해야 되느냐?"고 했고, 국민의힘 곽규택도 "공수처가 안마의자 4대를 임차하는 데 1년간 약 3000만 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고위공직자 안마처’ 아니냐?"고 비꼬았다.

사실 공수처의 지리멸렬은 탄생 때부터 예고돼 있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비롯해서 좌파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수사로 치부가 드러나자 이를 제어할 목적으로 만든 게 바로 공수처였으니 말이다. 공수처도 수사기관인만큼 조직 내에 검사가 있어야 하지만, 자신들을 때려잡겠다는 기관에 자원할 검사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결국 공수처가 뽑은 이들은 검찰 내에서 별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공수처가 출범 후 3년이 됐을 때 나온 기사는 보수지와 진보지를 가리지 않고 온통 비난 일색이었다.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지난 3년간 6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받고도 사실상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과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2기 공수처도 존폐 위기론에 맞닥뜨리게 될 것."

공수처는 인력부족 탓이라 했지만, 검사 수가 비슷한 남양주지청이나 평택지청 등과 비교해도 공수처의 사건처리 숫자는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신동욱 의원이 이번 국감에서 한 다음 말은 정곡을 찌른다. "왜 이런 지경이 됐느냐. 민주당이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공수처가) 검찰 수사권 박탈의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실적이 적었던 이유가 또 있다. 그 설립 목적상 공수처는 잡아넣으려는 목표가 보수 쪽 인사들일 수밖에 없었다. 수사기관의 핵심가치여야 할 공정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공수처가 무리한 기소와 영장신청을 했던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예컨대 공수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설이 있던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해 손준성 검사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 의해 기각당했고, 억지로 손 검사를 기소한 결과 또한 좋지 않았다. 1심에서만 용케 징역 1년을 받아냈을 뿐, 작년 12월의 2심과 올해 4월 대법원은 모두 손 검사에게 무죄를 선고해 버렸으니 말이다.

이 밖에도 공수처는 채상병 사건의 외압을 수사한답시고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출국 금지했지만, 당사자를 그 뒤 1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소환하지 않는 황당한 일을 벌이기도 했다. 그 출국금지를 이용해 민주당이 ‘피의자 해외도피’ 프레임으로 총선에서 득을 보긴 했어도, 민주당 역시 무능하기 짝이 없는 공수처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으리라.

늘 존폐 여부를 걱정하던 공수처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작년 12월,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을 때였다. 윤 전 대통령을 잡아넣는 것만이 자기들이 살길이라고 여긴 공수처는 ‘대통령은 내가 잡아넣을 거야!’라며 검찰·경찰과 다툼을 벌였고, 중앙지법에 윤통의 체포영장을 신청했다가 기각당하자 좌편향 법관들이 있는 서부지법에 영장을 신청해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구속영장마저 서부지법에 신청해 사상 최초로 현 대통령을 구속시킨 공수처는 그날 삼겹살에 와인을 곁들인 조촐한 파티를 하며 다음과 같은 얘기를 나눴으리라. ‘우리, 이제 안없어지겠죠?’ ‘그럼, 무려 대통령을 잡아넣었는데! 하하하.’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공수처의 견제대상이었던 검찰이 곧 해체되는 마당에, 무능한데다 예산만 낭비하는 공수처를 더 놔둘 필요가 있겠는가? 앞으로 수사는 말 잘 듣는 경찰이 할 테고, 경찰이 다루기 버거운 상대라면 특검을 동원하면 된다! 이미 사람도 죽게 할 만큼 무시무시한 3대 특검이 있는데다, ‘관봉권 띠지 분실’ 사건과 쿠팡 퇴직금 의혹도 상설특검에서 수사하겠다고 하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공수처에게 덕담 한 마디, "어이, 사냥개! 대통령 잡아넣을 땐 좋았지? 물 곧 끓을 테니 준비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