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폐지…72년 만에 왜 하필 지금?
요즘은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옛 속담을 이야기하면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듣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오얏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오얏(李)은 자두다. 자두는 중국이 원산지다. 보라색 자두를 중국 사람은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자두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면 ‘아, 저 사람이 자두를 몰래 따려고 하는구나’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오해받을 짓은 아예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핵심은 ‘불필요한 행동 자제’다.
정부 여당이 30일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고 신속하게 대체 입법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동안 배임죄는 문제가 적지 않다는 주장이 여러번 제기돼 왔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72년 동안 형법상 범죄로 유지돼 온 것은, 여러번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유지되는 게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는 대장동 사태 배임죄로 재판 받는 과정에서 대통령에 당선돼 대장동 재판이 연기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배임죄 폐지를 거론하게 되면 ‘대통령 재임중 셀프 범죄 지우기’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세간의 평은 십중팔구 ‘범죄 소멸 기도’로 볼 수 있다.
2022년 12월 화천대유·천화동인에 의한 대장동 사태가 터진 후 2023년 6월 검찰은 공소장에 대장동 배임액수를 최소 651억 원에서 최대 4895억 원으로 기록했다. 서울중앙지법은 배임액을 4895억 원으로 확정한 바 있다. 배임액 4895억원이라면 엄청난 액수다. 징역형이 얼마나 늘어날지도 알 수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당사자 대통령이 연루돼 있는 마당에, 지금 타이밍에,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우선 국민의 일반 윤리적 기준에도 맞지 않다. 국가 공권력을 이용해 사적인 범죄를 말소하겠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다. 한마디로 타이밍이 적절치 않다는 이야기다.
배임죄 때문에 경영진이 새로운 투자를 꺼리게 되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렇다고 배임죄를 폐지하면 회사의 자본과 기술을 말도 안되는 헐값에 팔아넘기는 범죄를 막기도 어렵다. 헌법재판소도 2015년 전원일치로 배임죄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배임죄로 기소된 현직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면소(免訴)해준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하필이면 이때에’ 갓끈을 고쳐 매려고 하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