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배임죄 폐지, 민주당표 ‘어쩔수가없다’
민주당이 30일 발표한 ‘형법상 배임죄 폐지’ 방침은 겉으로는 기업 친화적인 입법처럼 포장된다.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정부는 "구성 요건을 명확히 하고 처벌 범위를 축소한 대체입법을 마련하겠다"고 언급했다. 기업 경영진이 사소한 판단 오류만으로도 형사처벌을 받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눈에는 이 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선명하게 보인다. 대장동·백현동 개발 의혹 등으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이 그 직접적 수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이 "이른바 ‘이재명 구하기법’일 뿐"이라 꼬집은 것도 그래서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당은 지금까지 기업 오너와 경영진에게 불리한 법안들을 강행해왔다. 노조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한 노란봉투법, 경영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모두 반기업 정서를 등에 업고 추진됐다. 그런 정당이 하루아침에 기업 친화 법안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과연 노동자와 투자자들을 위하는 길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표면적으로는 기업 경영 합리화를 내세우고 있으니 한번 짚어보자. 기업 경영진의 배임 책임이 약화되면, 회사의 손실은 고스란히 근로자와 소액 주주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김도읍 의원이 지적했듯, 경영자의 면책은 결국 투자금 손실과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 경영을 해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72년 동안 이어졌던 법이 공론화 과정도 없이 왜 하필 지금 폐지돼야 하는 것일까?
이 모순적 상황은 마침 최근 개봉한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떠올리게 한다. 박 감독은 그간 친노동자 성향의 작품을 선보여왔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해고 노동자와 기업주의 대립 대신 노동자들끼리의 생존 경쟁을 그렸다.
이야기의 끝은 더욱 기묘하다. 인공지능이 도입된 자동화 공장에서 더이상 ‘노동자 대 자본가’라는 구도가 성립되지 않는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결국 노동자들끼리 싸워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경쟁 사회의 풍경을 그린다.
주인공인 만수는 오로지 자신의 재취업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잠재적 경쟁자들을 하나둘씩 제거한다. 제목처럼, 만수에게는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배임죄 관련해서는 민주당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반기업 정서를 무기로 삼아왔던 민주당이 배임죄 폐지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노동자도 기업도 아닌 ‘한 사람’만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자기부정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끝내 재취업한 만수 앞에는 오히려 피할 수 없는 어둠의 장막이 드리운다. 과연 그 방법뿐이었을까?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자에게는 또다른 ‘어쩔수가없는’ 선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